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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Vernon RPS COLLABORATION

[버홋] 계약

익명 / 글

"스폰이라는 단어는 70대 회장님이 쓸법한 말이고 우리는 좀 젊게 협찬이란 단어를 쓸 예정입니다."
"스폰이든 협찬이든 내가 이걸 해야 하는 이유가 뭔데?"
"힘 좋고 능력까지 있는 젊은 선수를 우리 계열사 구단에서 잡고 싶어 하니까요."
"대신 나가주면 안 될까?"
"대표님. 회장님이 지시한 일이에요."
"귀찮아.."
"7시에 약속 잡아 뒀습니다. 식사 시간이 정해져 있다더라구요. 도망가면 안 됩니다. 술자리로 넘어가면 못 마셔도 자리는 지키세요. 호텔은 평소에 가시던 곳으로 잡아뒀습니다. 카드키는 정장 왼쪽 주머니에 넣어뒀습니다. 연락은 카톡으로 전화는 가급적 피하세요. 자리를 오래 비우지 마시고 적당히 성격 버리고 맞춰서 어울려주세요. 계약은 다음 주 월요일에 하기로 했으니까.."
대리석 바닥 위를 구두 굽으로 소리 내며 돌아다니며 줄줄 외운 대사를 읊으며 정장을 입혀준 원우가 빙긋 웃었다.
"다녀오세요. 대표님."
실패하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웃음이었다. 이럴 거면 대표직에 쟤를 앉혀야지. 접힌 목 카라를 펴고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오른쪽 주머니 속 카드키가 달그락거렸다. 왼쪽이라더니 아니었잖아. 술을 마실지 모른다며 기사가 차를 운전했다. 부드럽게 출발하는 차에 뒤로 기대며 창밖을 올려보았다. 날씨 더럽게 좋네. 관련 기사를 보내 미리 읽어보시고 가라는 메세지에 하나하나 링크를 클릭해 읽었다. 화면을 가득 채운 광고창을 피해서 대충 글씨만 골라 읽고 사진까지 가리는 광고창에 귀찮아서 얼굴도 확인하지 않았다. 좀 있으면 직접 만날 것이고 확인 하지 않아도 괜찮을 것 같았다. 운동선수들은 잘 마시고 잘 먹는다던데 적당히 카드만 주고 빠지고 싶다. 좋아하는 걸 잔뜩 먹이고 좋은 분위기에 관련 대화를 하다가 월요일에 좋은 결과를 기다린다고 하고 빠지면 될 것이다. 회장님이 지시한 일이라는 게 결국 얼굴마담이 필요하니 멀끔한 네가 다녀오라는 뜻이었다. 하긴 형제 중에 제일 멀끔하긴 했다. 순한 듯 독한 듯 적당히 착해 보이는 얼굴.
도착했다는 말에 보고 있던 화면을 꺼버렸다. 끝나면 바로 호텔로 가겠다고 말해두고 키를 카운터에 맡겨두라고 했다.
식당으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며 시간을 확인했다. 두시간 정도면 끝나겠지. 예약자 이름을 말하니 일행이 기다리고 있다며 안내에 따라 걸으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운동하는 사람은 땀 냄새가 나지 않던가? 그건 조금 걱정이네.
"선수가 뭐 저렇게 생겼어?"
"칭찬 감사합니다."
고개를 살짝 숙인 남자가 다시 눈을 마주쳤다. 순영은 얼굴을 보느라 앉는 법을 잊은 사람처럼 계속 서서 눈만 깜박였다.
"밥 먼저 시켰는데 괜찮으세요?"
"예.. 뭐.."
"서서 밥 드시는 건 아니죠?"
"예.."
겨우 의자에 앉은 순영은 다시 얼굴을 보았다. 운동복으로 저런 핏이 나오는구나. 운동 열심히 했나 봐. 아. 운동선수지. 살짝 곱슬거리는 머리칼도 긴 속눈썹도 적당히 벌어진 어깨도 자신이 입으면 트레이닝복이 되는 트레이닝 복도 모든 게 잘생겼다.
"혹시 저 아세요?"
"네. 코트 위의 카리스마 최한솔이잖아요."
대답이 이상했나? 미간을 좁히더니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냥 최한솔이에요."
코트 위의 왕자라고 했으면 도망이라도 갈 것 같았다. 입술을 꾹 물고 웃는 걸 들키지 않으려고 고개를 돌렸다가 헛기침을 하고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저는 권순영입니다. 만나서 반가워요. 그냥 최한솔 씨"
놀리지 않으려 했지만, 그냥 최한솔이라는 말이 너무 웃겨서 참을 수 없었다.
"네. 그냥 최한솔입니다. 저도 만나서 반가워요."
시원하게 웃으며 반갑다기에 넋을 놓을 뻔했다. 목이 타 물컵을 잡으니 금방 음식이 나와 테이블을 가득 채우기 시작했다. 입을 축여도 끝나지 않는 접시들에 놀라자 슬쩍 눈치 보는 한솔이 보였다.
"오늘 훈련이 빡세서.."
"괜찮아요. 부족하시면 더 시키셔도 되니까 눈치 보지 말고 충분히 드세요."
접시 위에 지글거리는 스테이크를 보니 속이 느글거리는 듯 했다. 물김치 마시고 싶다. 그럼 감사히 먹겠다며 포크와 나이프가 잘그락거리며 움직였다. 잘 먹네. 먹는 걸 보니 입맛이 돌아서 따라 음식을 씹었다. 식사 시간에 입은 음식물을 씹는 일만 하라는 배움을 잘 지키는 어른은 처음 봤다. 종종 음식의 맛이 좋다는 듯 감탄사를 하고 다시 씹고 바쁘게 접시를 돌아다니는 걸 보고 순영은 생각했다. 카드만 주고 가는 게 얘가 원하는 일이 아닐까? 식비 지원에 제한이 없다는 걸 추가로 해야 하나 고민했다. 소스가 묻은 입술 끝을 보고 알려줄까 했더니 금방 눈이 마주쳤다. 살짝 입꼬리를 툭툭치고 소스가 묻었다고 작게 말하니 냅킨으로 입술을 닦는다. 흰 냅킨이 지나간 자리에 붉은 입술이 예뻤다. 입술.
"저기.."
"네?"
"아직 묻어있나요?"
"아 괜찮아요. 입술 예뻐요."
아까는 조용히 입꼬리만 올려 웃던 남자가 소리 내 웃는다.
"제 입술 예쁘죠."
목덜미가 더웠다. 놀리려 하는 말인가 싶어 튀어나오는 아랫입술을 깨물어 참고 인상을 찌푸렸다. 활짝 웃는 입 사이로 빼곡한 이가 보였다. 키스하면. 혀가 긁히겠다.
남길까 걱정하지 말걸. 빈 접시를 치우는 걸 보다가 술자리를 먼저 제안했다. 핸드폰을 확인하던 한솔이 고개를 까딱거렸다.
"술 좋아해요?"
좋아하지 않았다. 취하는 게 싫어서. 고개를 끄덕이고 칵테일이 어떤지 물었고 그는 나쁘지 않다며 바로 내려갔다. 엘리베이터에서 조용히 서 있던 게 어색해 아무 말을 했다. 키가 커서 많이 먹나 봐요. 몇 살부터 운동했어요? 어떤 대화를 해야 어울릴지 고민하느라 점점 학생 때 자기소개하듯 말하게 되었다. 공통점이 없으니 알고 있는 한 부분이라도 같으면 대화하기 편하니까. 다만 대답하며 느긋하게 걷는 한솔의 걸음을 따라잡기가 조금 버거웠다. 운동하는 사람은 걷는 것도 근육을 써서 걷는가. 급하게 그를 따라갔더니 갑자기 휙 뒤돌아보았다. 그 후엔 발걸음을 맞춰 걸었다. 구두 굽 소리가 조금 컸던가 봐.
적당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각자 술을 고르고 대화를 이었다. 훈련은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는 말에 재미없을지도 모른다며 꽤 진지하게 손으로 허공에 그림을 그리며 설명을 했다.
알록달록 술은 달았고 조명은 어두웠다. 옆에 앉은 남자는 유쾌하고 눈동자가 예뻐서 자꾸 웃음이 났다.
둘은 테이블 위로 턱을 괴고 가까이 마주 보고 앉았다. 점점 가까워지는 순영이 앞으로 넘어질까 봐 앞에 놓아둔 술잔을 옆으로 치워뒀다.
"취한 거 아니죠?"
"한잔에 취하는 남자로 보여?"
조금. 말을 삼킨 한솔이 웃었다. 대표라면서 엄청 어린 얼굴이기에 신경 쓰여 나이를 물었더니 적당히 연상이었다. 그러더니 말을 놓았다. 형이라 부르기엔 묘해서. 적당히 서로를 부르지 않고 대화하는 게 능숙해서. 자꾸 술로 목을 축이는 순영이 걱정되어 물잔을 쥐여줬더니 고맙다며 웃었다. 웃으니까 날 선 눈이 유순해졌다. 둥글게 말린 말랑한 눈꼬리를 엄지로 살짝 눌러보았다. 뜨거운 피부가 부드러웠다.
"왜?"
"눈이."
순영의 눈꺼풀이 깜박일 때 마다 엄지를 간지럽게 만들었다. 속눈썹에 엄지가 느껴진다며 자꾸 깜박거렸다. 엄지가 움직였다. 눈꼬리에서 볼을 타고 턱선에 미끄러지듯 아랫입술을 살짝 짓눌러 쓸었다.
"나도."
조금 뜨겁고 작은 손이 한솔의 눈썹 뼈를 쓸었다. 짙은 눈썹을 검지로 쓰다듬었다.
"눈 감아봐."
말랑한 손의 다음 종착지는 눈꺼풀인가 싶어 느리게 눈을 감았다. 손가락이 눈 위를 쓰다듬고 턱을 쥐더니 입술 위로 뜨거운 것이 닿았다 떨어졌다.
"눈 떠도 돼요?"
"기분 나쁘면 계속 감고있어도 돼."
"키스할 땐 눈 감는 게 맞잖아요."
입만 맞댄 것이 키스야? 순영은 웃으며 눈을 꼭 감은 얼굴을 보다가 말했다.
"난 키스할 때 눈 뜨고 있어."
"이상하네요."
"맞아"
"그럼. 눈 감고는 뭘 해요?"
"글쎄"
더는 얼굴을 감싸는 열기가 없어 한솔은 눈을 떴다. 눈동자 속에 자신이 비춰 보였다.
"궁금해?"
급하게 방문을 닫고 신발장에 기대어 서로의 입안을 헤집었다. 점막을 쓸어 간지러움에 움츠러들었더니 목을 끌어당겼다. 알콜향이 입안에 맴돌고 몸에 열이 올랐다. 더워서 스스로 셔츠를 풀어 옷을 벗다가 그가 너무 급한 거 아니냐는 말을 했다.
딱 여기까지 기억이 난다.
눈이 뻑뻑했다. 울었던가? 몸이 욱신거렸다. 춤이라도 췄나? 술 마시면 울면서 춤을 췄던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가 문득 가랑이가 아팠다. 알게 되니 미칠 듯 쓰라리고 화끈했다.
아. 잤구나.
[고기 좋아해요. - 그냥 최한솔-]
이건 또 뭐냐. 어긋난 듯 욱신거리는 허리로 느리게 일어나 샤워를 하고 나와 침대 헤드에 꽂혀 팔랑거리는 종이가 보였고 그걸 자세히 들여다보니 한솔이 남긴 메모가 적혀있었다.
내가 뭘 좋아하는지 물었나 보다. 그냥 최한솔로도 놀렸구나. 침대에 누워서 최대한 자세히 기억을 더듬어보았지만. 떠오르는 건 몸의 구석을 핥고 쑤시는 기억들 뿐이었다. 어쩐지 온몸이 아프다 했다. 이 정도면 입원해도 될 것 같았다. 운동선수라 그런지 힘이 좋네..
연락처 없이 할 말과 이름만 적어둔 종이를 잘 접었다.
"어제는 푹 쉬었나요."
전원우가 있었지. 웃는 얼굴이 웃고 있질 않았다. 가면이 그리 얇아서 기름종이보다 얇은 것 같아.
"조금 더 쉬고 싶지만 너 생각해서 온 거야."
"기왕 쉬는 거 평생 쉬었으면 좋았을걸."
"내 자리를 넘보는 거야?"
"ㅎ 제가 넘본 건 대표님 목숨이었는데요."
쟤는 무섭게 말해서 문제야. 대화로 상황을 풀어 가는 방법도 있잖아. 진심으로 말하니까 더 무서워진 순영이 얼른 한솔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 잘했지? 계약 따낸 거지?"
이럴 때 보면 순영은 고등학생 때와 변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원우는 한숨을 쉬며 그래 따내서 좋겠습니다는 말을 하며 서류를 건넸다.
"방법이 조금 특이하지만요."
[선수가 원할 시 대표는 함께 식사를 해야 한다.]
"뭐야 이게?"
"대표님과 함께한 식사가 인상적이었다고 그러더군요."
어떻게 하신 겁니까? 원우의 목소리가 웅웅 맴돌았다. 식사에 포함되는 것 중에 자신의 몸도 있을까 해서.
"고기를 많이 시켜줬어."
최한솔은 육식동물. 고기를 좋아한다. 그렇다면 내 몸= 고기? 쓸데없는 생각을 할 때 메모하는 버릇은 좋지 않다. 혹시나 이걸 누군가 발견하고 트집을 잡을지 모르니. 그러니 속으로 최대한 느긋하게 생각을 풀어나가야 했다. 하지만 그게 잘 될 리가.
"대표님. 몸이 있는 자리로 돌아오시지요."
"어?"
"정신이 지구 반대편에서 산책이라도 하는 것 같네요. 또 무슨 일입니까?"
서류 위에 꽃을 그리고 있었다. 꽃밭이네. 볼을 두어대 때리고 서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그래 딴생각을 하지 않으려면 일에 집중하는 거다.
"아.. 원우야"
"왜"
"연락처 줬어?"
무슨 뜻이냐는 듯 보는 얼굴에 웃으며 대답했다.
"최한솔"
동료의 부름에 움직이던 몸을 멈추었다. 머리부터 발끝으로 땀이 흐르는 게 느껴져 찝찝했다.
"어제 어떻더냐?"
"무슨 뜻인지.."
"스폰서 말이야. 몸매 죽이는 사람이더냐?"
찡그려진 미간이 펴지질 않았다. 운동의 흐름을 방해하고 쓸모없는 말을 하다니. 문장에 조잡스러운 단어를 다 섞는 것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거기다 저 말들은 어제 그 사람에게 하는 말이어서 불쾌했다.
"몸매.."
"그래 임마. 어떻더냐? 크으.. 나도 받고 싶다."
"근육이 부족해 보였어요."
그럼 이만. 꾸벅 고개를 잠깐 숙이고 수건을 챙겨 대충 몸을 닦았다. 뒤에서 벙찐 동료가 뭐라 말하는 게 들려 헤드셋을 끼고 가방을 챙겨 나왔다. 반바지와 티셔츠가 들러붙어 떨어질 생각을 안 했다.
마르고 말랑했다. 근육이 부족해 보이는 것은 말랑한 피부 때문이었고 키우면 단단해지겠지. 그럼 골반에 닿는 느낌도 다를 것이다. 어느 쪽이 좋으냐 물어본다면 단단한 쪽이었다. 말랑해서 아파 보였기에. 자신이 손으로 잠깐 쥔 허리에 붉은 자국이 금방 생겼고 조금 눌린 다리는 무겁다고 칭얼거렸다. 엉덩이 한쪽을 쥐고 허벅지 위에 앉혀 움직이는 그를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몸을 쓰는 법을 알려주고 싶었다.
밥을 먹자는 조건을 넣은 건 충동적인 결정이었다. 그가 원하지 않으면 깨질 관계였고 한 번 더 만나고 싶은 작은 소망이었으니까. 원하지 않으면 끝이겠지. 조금 아쉽겠지만. 원하지 않는 걸 억지로 하고 싶은 마음은 없으니까.
샤워하고 머리를 털며 침대에 앉으니 핸드폰이 깜박거렸다. 한솔이 웃었다. 싫다는 건 아니구나.
[나도 고기 좋아해 -권순영-]
싫다고 하면 어떻게 나오려나? 당황하는 모습이 보고 싶었다. 반응이 어떨지 예상할 수 없어 궁금했다.
[밥 먹을래요? -최한솔-]
두 번째는 순영이 좋아하는 곳으로 갔다. 처음과 같이 순영은 정장 차림이었고 한솔은 편한 트레이닝 복이었다. 저거 은근 벗기기 어렵던데.
한정식이라 반찬이 많아 이것저것 집어먹던 한솔이 한입 가득 우물거리는 걸 보았다. 잘 먹는다.
"맛있어?"
고개를 끄덕이며 물컵을 잡는 손의 마디가 굵직했다.
"안 먹어요?"
"네가 급하게 먹는다는 생각 안 해?"
"아 죄송해요"
"괜찮아 선수랑 일반인이랑 같겠냐?"
느긋하게 입에 음식을 물고 삼키는 걸 보고 속도를 늦췄다. 하긴 저 사람은 정장이랑 친하니까 싫어할지도 모르겠다.
"급하게 먹는 거 싫어해요?"
"싫어하는 것보단 잘 먹네 체하면 어쩌나 그런 생각 했어."
"체할 만큼 급하게 먹는 건 아니에요"
"내가 그 속도로 먹으면 너도 똑같은 생각할걸?"
대화가 섞이니 입안에 가득 음식을 물고 있을 수 없었다. 입이 작은가 했더니 저것도 사업의 일부인 듯 했다. 밥 먹는 동안에도 회의를 한다지.
"평소 속도가 그래요?"
"좀 느린 편이지 어렸을 때 심하게 체한 적이 있어서 더 꼭꼭 씹어먹어"
떡갈비를 젓가락으로 쪼개어 밥 위에 얹어줬다.
"넌 잘 먹으니까 그냥 평소대로 먹어 나한테 맞추지 말고"
고개를 끄덕이며 한입에 밀어 넣는 모습에 피식 웃었다. 잘 먹네.
식사가 끝나고 자연스럽게 택시를 타고 호텔로 가는 모습에 조금 웃음이 났다. 진짜 스폰서 같네. 맞긴 한데 몸에 투자한 걸 이렇게 써도 되려나?
고개를 돌리면 잘생긴 한솔이 부드럽게 웃으며 보고 있었고 가장 외진 방을 부탁하고 오늘은 맨정신에 하는 거라 조금 걱정하게 됐다. 한참 위에서 내려오는 중인 엘리베이터를 올려다보다 고개를 다시 내려 구두코를 보았다.
"저기."
"대표님이라 불러."
"대표님은 이 짓. 다른 사람들이랑도 해요?"
물을 마시지 않았지만 사레가 들린 듯 기침이 터져 나왔다. 한참 콜록댔더니 목구멍이 화끈거렸다.
"다른 사람이랑 하는지 왜 궁금해?"
"처음 같은데 처음이 아닐까 봐."
"그거 맞아. 처음이라고 답하면 전의 질문의 답도 같이 되는 거지?"
"앞으로 또 할 생각 있어요?"
"글쎄.. 사실 밥 먹는 게 끝인데.."
띠-링. 마침 엘리베이터가 도착하고 문이 열렸다. 얼른 안으로 들어간 순영이 주머니의 카드키를 꺼내 살짝 흔들어 보였다.
"밥 말고 다른 것도 먹고 싶어진 것도 처음이라.."
눈꼬리가 접히고 입꼬리가 올라간다. 한솔은 표정을 굳히고 엘리베이터에 탑승하고 닫힘 버튼을 엄지로 꾹 눌렀다.
"함부로 유혹하지 마요. 운동선수라 힘이 꽤 세니까."
"하긴.. 얼마나 힘으로 주물렀는지 허벅지에 손자국이 남았더라."
미간에 줄이 생긴다. 왜? 꼴려? 순영은 웃음을 꾹 참으며 점점 올라가는 숫자를 보았다.
카드키를 꽂고 몇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었다. 기억나는 건 남자의 아랫도리와 복근과 허벅지와 진한 키스. 참 끝없는 흥분도 추가하자.
하나의 운동을 하는 것 같았다. 장거리 마라톤을 뛰면 이런 느낌일까. 잠깐 휴식 시간을 주고 물을 먹이더니 다시 아래를 가득 채우는 성기가 날뛰었다.
갈아 끼운 늘어진 콘돔을 묶어서 휴지통에 던져넣는 모습을 보고 안심했다가 탁자 위의 콘돔을 뜯는 모습에 기겁했다.
"처음에도 이렇게 했어? 어떻게 버틴 거지."
"처음은 술 때문에 오래 하진 못했어요."
힘들다고 말하려다가 이미 뜯은 콘돔을 되돌릴 수 없겠다 싶어서 몸에 힘을 뺐다. 한솔은 엉덩이 사이를 엄지로 벌려보더니 한숨을 쉬었다.
"아이고.. 퉁퉁 부었네요."
"운동선수가 무자비하게 박아서 그래."
젤을 허벅지에 뿌리더니 다리를 모아서 허벅지 사이에 좆머리를 비볐다.
"이러면 괜찮아요?"
고개를 끄덕였지만 이상했다. 섹스를 하는 것 같지도 않으면서 섹스를 하는 것 같은 기분. 감질난다고 생각했다. 미쳤나 보다.
겨우 마무리를 하고 몸을 씻었다. 구석구석 깨끗하게. 한 번 더 하자는 말이 목구멍에 올라왔지만, 복상사가 뭔지 알게 될 것 같아서 꾹 참았다.
일주일에 두 번은 한솔과 식사 시간을 가졌다. 고기로 배를 채운 한솔을 데리고 침대에서 정액으로 배를 채웠다. 하루는 꽤 고가의 시계를 한솔의 손목에 채워주었다. 볼 때마다 내 생각 해. 흔한 대사를 말했더니 바로 침대에서 사용하려 했다.
"60초. 65초."
플러그로 막은 요도가 분출을 못 해 아프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초침이 소리 없이 넘어가는 손목시계는 정말 65초를 지나고 있는지 사실 2분이 훌쩍 넘은 건 아닌지 의심하게 했다. 하지만 한솔은 솔직해서. 그래서 순영은 아랫입술을 앞니로 물어 멀기만 한 2분이 오기를 기다렸다.
잘했다는 칭찬 한마디에 꽤 기분이 좋아 배시시 웃었다. 최근에 들은 기분 좋은 말이었다고 했더니 한솔이 활짝 웃었다.
관계는 스폰에서 섹스파트너로 그리고 곧 무언가의 경계선에 서 있게 되었다.
한솔의 칭얼거림이 늘었다. 칭얼거림이지만 사실 다정한 한마디였다. 자고 가요. 아침 먹고 가요. 점심 먹고 가요. 저녁까지 먹으면 안 돼요? 다정한 말에 홀딱 넘어가 원나잇이 두 밤이 된 적도 많았다.
"오늘은 안돼."
"내일은 돼요?"
말장난도 늘었다. 처음엔 대표님 대표님. 사무적이었던 것 같았는데. 그래 처음부터 우리는 서류로 묶여있었으니까. 당연하였는데 점점 관계가 깊어지는 듯했다. 끊어내야지.
"오늘도 내일도 아마 앞으로도. 곧 약혼식 올리기로 해서 본사로 돌아가야 해."
어차피 이런 거잖아. 순영은 고개를 돌렸다. 한솔의 눈은 반짝거리고 예뻐서 마음이 약해지게 만들었으니까. 조금 뜸을 들인 대답이 나왔다.
"아직 결혼식은 아니네요."
한솔이 웃는 것 같았다. 푸흐흐 웃는 소리가 들렸고 목소리도 가벼웠다. 그래서 괜찮다고 생각했다. 한솔은 깊은 관계라고 생각 안 했나보다는 생각. 하긴 서류로 시작한 관계니 갑과 을의 계약이 끝나면 서로 볼 일도 없으니까 당연한 결과였다.
순영이 끊어낸 것은 자신의 마음이었나.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쓸쓸해졌다. 서류 이야기는 비서를 통해 알려주겠다고 말하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
갑은 을과 계약을 끝낸다. 서류를 읽던 한솔이 그 문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계약이 드디어 끝났다. 순영은 약혼식을 하고 자신은 계약이 끝났고. 이젠 순영을 이름이 아닌 대표라고 부르지 않아도 된다. 그거 하나로 한솔은 좋아서 웃음이 났다. 비서는 그런 한솔을 조금 안쓰럽게 바라보다가 서류 끝에 도장을 찍으면 된다고 말했다. 붉은 인장에 도장을 꾹 눌러 서류에 찍었다.
다음에 찍는 도장은 혼인 신고서였으면 하는 바람으로 도장에 묻은 인주를 휴지로 닦아냈다.
본사로 올라간다던 순영은 정말 본사로 가버렸고 한솔은 그런 순영이 퇴근하길 기다리며 매일 회사에 출근 도장을 찍었다. 처음에 정색하고 무시하던 순영이 이젠 포기했다는 얼굴로 또 왔냐는 말을 했다.
"운동선수는 훈련한다고 바쁜 거 아니야?"
"순영씨 꼬시는 훈련 중이에요."
참, 호칭은 서류에 도장 찍던 날 바꿔버렸다. 순영 씨라는 호칭에 아직도 움찔거리며 어색해했다. 사귀자는 말은 매일 했다. 결혼하자는 말은 주에 한번. 신혼여행은 어디가 좋으냐는 말은 피곤해서 무방비할 때 종종.
결국 순영은 두손 두발 다 들어버렸다.
"사귀는 건 늦었고 결혼이나 하자."
한솔과 순영의 두 번째 서류는 혼인신고서였다. 처음 계약하던 날에 반했다는 말은 나중에 알려주었다. 미리 말해버리면 계획하고 그랬냐고 할 것 같아서. 이제 와서 생각해보면 순영도 처음 계약하던 날 반했던 거 같았다. 결혼식은 작게 했다. 새신랑이 흰 정장을 찢어버릴까 봐 걱정되어서. 뒤늦게 순영은 처음 만난 날 술을 마신 게 후회되었다. 처음의 설렘을 기억 못 해서 아쉽다는 말에 한솔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원한다면 알려주겠다고 침대로 데려갔다. 후기는 역시 맨정신에 하는 게 좋다는 답이었다. 

태그

버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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