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Vernon RPS COLLABORATION
[솔잇] 72
델 / 글
"앞으로 3일밖에 살지 못한다면 무엇을 하고 싶나요?"
이 질문을 들었을 때 조바심을 느끼지 않고 편하게 답할 수 있다면, 그 이유는 자신이 죽을 날을 모르기 때문일 거다. 만약 정말로 살날이 3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그걸 알 수 있는 방도가 없기에 마치 먼 시점의 얘기인 듯 대답할 수 있다. 완벽히 타인의 이야기인 것처럼. 이 질문을 들은 한솔이는 대답하지 못했다. 머릿속이 난잡하여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머릿속으로 한 질문이 의미 없는 쓰레기가 되어 사라지고, 그 자리를 알지도 못하겠는 생각이 채운다. 한솔의 생각이 혼란스러워진 이유는 단 한 가지의 사실 때문이다. 자신의 손목에서 반짝이고 있는 카운트가 생겼다는 것.
[71 : 57 : 13]
그것은 잠을 자려고 했을 때 생겼다. 시간을 보니 새벽 1시가 넘은 시각이었다. 손목에 가느다랗게 새겨진 하얀색 시계는 약간의 빛을 뿜었다. 몸에 새겨졌음에도 착실히 카운트가 줄어들고 있었고, 아프지도 않았다. 한솔이는 이것을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다. 사람들은 자비의 72시간이라고 불렀고, 이 시계의 카운트가 다 줄어들면 사망한다. 사인은 정해지지 않으며, 카운트가 줄어들면 어떠한 경우로든 죽는다는 것 같다. 그것이 사고사이던, 심장마비던. 누군가는 이것을 불안에 미쳐버리게 하는 카운트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마지막으로 정리할 시간을 주는 자비의 카운트라고 말했다. 다른 특징은, 카운트가 끝나기 전에는 절대로 죽을 수 없다는 것. 카운트가 남아있다면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살아남는다. 남는 시간은 늘리거나 줄이는 게 불가능하다.. 이것이 한솔이가 알고 있는 것의 전부였다. 모든 사람에게 생기는 카운트에 대해서 모를 리가 없으니까.
자기는 글렀다. 한솔이는 한숨을 푹 쉬고 자신의 손목만 한참을 보고 있었다. 내가 지금 죽는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겠지. 다만 한솔의 마음에 걸리는 것은, 자신의 옆에서 세상 모르게 자는 제 형이자 애인이었다. 사귄 지는 11년이라는 긴 시간이지만 자신의 나이는 28밖에 안되었다.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같이 보내고 겨우 둘 다 취업을 한 후에 동거를 시작한 지는 이제야 2년이다. 아직 형이랑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한솔이는 침대에 누운 후, 자는 형의 등을 봤다. 내가 형의 자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시간도 얼마 안 남았네. 미안해, 명호형. 한참을 뒤척이던 한솔이는 깨어나 자신의 손목을 다시 봤다.
[70 : 47 : 55]
남은 목숨을 직접적으로 볼 수 있다니 안타깝네. 실소한 한솔이는 아직 자는 형이 깨어나지 않게 조심히 일어났다. 그 후 옆 방으로 가 스탠드를 킨 후 다이어리를 하나 꺼내 들었다. 사무적인 다이어리였지만 괜찮았다. 낱장의 종이로 쓰면 유실될지도 모르기에. 한솔이는 잘 안 지워지는 볼펜을 들어, 글을 적기 시작했다.
「 형 안녕. 나 한솔이. 형이 이걸 읽고 있다는 건, 내 유품을 정리하고 있을 때일 거 같은데.. 연애할 때도 형한테 편지는 많이 안 썼는데, 이제 형을 못 본다고 생각하니 남기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남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게 많은데, 일단 회사를 그만두는 것부터 해야겠지. 지금 회사에 입사하려고 여러 가지 많이 했었는데, 그때마다 형이 옆에서 많이 도와줬었잖아. 형은 먼저 취업했으니까, 자소서 같은 거 도움 많이 받았었지. 집에 돌아와서 자소서 한번 보자면서 봐줬던 거 기억나. 내가 취업하고 난 후에 같이 살기 시작했잖아. 회사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제는 갈 일 없을 거 같아. 남은 시간 동안 무엇을 할까 고민했는데, 나는 형이랑 같이 있으면 그걸로 됐어. 오늘 수요일이니까 형은 회사 가겠다. 형 회사 갈 동안 나는 가족들 만나고 올게. 형한테 말할까 생각도 했는데, 형은 이미 다 눈치챌 것 같기도 하고.. 말하면 슬프잖아. 바꿀 수 있는 건 없는데 떠나야 하니까. 형은 또 걱정할 거잖아. 떠나기 전에는 형의 웃는 모습만 보고 싶으니까. 웃어줘 형, 나 걱정하지 말고. 」
한솔이는 다이어리를 덮었다. 하고 싶은 말도 제대로 정렬되지 않고 뒤섞이는 느낌이다. 자꾸 카운트를 보면 불안해질 테니까 손목에도 시선을 두지 않았다. 한솔이는 눈을 감고 다른 사람이 했던 말을 생각했다. 정리할 시간을 주는 마지막 자비. 만약 정말 자비를 베푼다면 이렇게 잔인한 카운트도 안 하지 않을까. 한솔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일어섰다. 침대까지 가는 시간도 낭비처럼 느껴졌지만, 일단은 잠을 청했다. 괜히 잠을 안 자겠다고 버텼다가 컨디션이 나빠지는 게 더 싫으니까. 남은 시간을 그나마 충실하게 보내려면, 최대한 평소대로 살아야 했다.
누웠지만 잠은 쉽게 오지 않았다. 머릿속을 괴롭히는 건, 제 애인에게 이야기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내일은 정리를 위해서라도 명호가 회사에 가는 것을 원하지만, 목요일과 금요일은 아니었다. 시계로 보아하니 자신의 카운트가 끝나는 시간은 토요일 새벽이었다. 차라리 주말이라도 보내면 좋았을걸. 한솔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애써 잠을 청했다.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 지금 머리 아파서 좋을 일은 없지.
눈을 뜨니 평소와 같은 아침이었다. 하늘은 눈치도 없게 맑았고 자신의 애인은 오늘도 예뻤다. 출근길이 아무리 바빠도 밥은 같이 먹자는 생각이었기에, 한솔이는 씻으러 들어갔다. 오늘은 명호가 아침을 차릴 차례였으니까. 반찬이라고 해봐야 밑반찬들과 바로 구우면 되는 비엔나소시지, 계란후라이 정도로 끝이었지만. 오늘은 빵을 먹기로 했기에 스크램블 에그를 넣은 베이컨 샌드위치와 커피였다.
"더 자고 싶었을 텐데, 고마워 형."
"너랑 먹는 건데 뭘. 오늘은 회사 안 가?"
순간 사레가 들릴 뻔했다. 먹고 있던 샌드위치를 뱉을 뻔한 한솔이는 침착하게 머리를 굴렸다. 만약에 여기서 회사를 그만뒀다고 솔직하게 말하면 어떨까. 명호는 눈치가 빠르니 바로 눈치채지 않을까. 아니면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왜 그만두냐고 혼이 날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회사를 다녀오겠다며 급하게 정장을 차려입을 수도 없다. 오늘은 가족만 만나면 됐으니까.
"아, 휴가를 받았어. 프로젝트도 끝났고 휴가도 남아있으니까, 쓸 때도 됐지."
명호는 약간의 탐탁지 않은 표정을 지었지만, 곧 풀렸다. 그저 잘 쉬어. 이 한마디를 하고 식사를 마쳤을 뿐이다. 커피 향이 참 좋네, 뒷정리를 하는 명호를 바라보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이런 여유로운 아침을 즐기는 것도 며칠 안 남았네. 그렇게 생각하니 내심 우울해져선 마시던 커피를 내려놓았다.
"다녀올게, 잘 놀고 나중에 봐."
"응, 다녀와 형."
평소에는 출근 시간이 달라 같이 출발하거나 한솔이가 먼저 출발했기에 한솔이가 명호를 배웅하는 건 거의 처음이었다. 멀끔하게 정장을 차려입은 명호를 약간 끌어안아 등을 토닥이곤, 문이 열리는 걸 지켜봤다.
"형, 사랑해."
"나도."
평소엔 아껴 말하던 말을 하네. 그렇게 생각하지만 내심 기분이 좋아진 명호는 출근길을 걸었다. 지하철에 사람이 가득 타 있어도 기분 좋을 것만 같다.
*
명호가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 한솔이는 가족들과 만나서 밥을 먹었다. 가족에게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분위기가 너무 밝아 눈치만 보다 이야기하지 못했다. 이런 화목한 분위기를 망치면 후회할 것 같다. 그런 생각이 들어 무겁지 않은 이야기들을 하다가 헤어졌다. 가족들이랑 헤어지고 난 후, 가장 친한 친구라고 자부할 수 있는 승관이도 만났다. 취업하고 나선 오랜만이라, 하고 싶은 이야기는 많았지만, 시간은 없었다. 명호를 맞이해주고 싶었다. 명호를 맞이하기 전에 집안일도 해놓고 싶었으니,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며 한껏 들떠있는 승관이를 진정시키고 본론을 얘기했다.
"나한테 셀카 찍는 방법 좀 알려줘."
"무슨 일 있어? 너 요즘은 꽤 잘 찍잖아."
"..좀 더 완벽하게 찍어야 할 일이 있어서."
승관은 대충 눈치를 챘다. 그래, 카운트가 뜬 사람들은 이런다더라. 갑자기 안 하던 행동을 하고 그런다더라. 자신과 가장 친한 친구를 잃는다는 생각에 눈물이 차오를 뻔했으나, 최대한 덤덤하게 행동했다. 나보다도 더 잘 찍는 형이 있다. 근데 그 형은 지금 너무 바쁘니까 카톡으로 알려줄 거라고. 번호를 받고 난 후에 일은 빠르게 진행됐다. 승관이가 미리 언질을 해준 건지, 아니면 그 형이 마침 한가했던 건지.
승관이가 알려준 문준휘라는 사람은 자신만의 사진 찍는 팁을 알려주고, 팁을 활용한 자신의 셀카를 보내줬다. 그 후 찍어보라며 미션을 몇 개 내줬고, 보낼 때마다 수정할 부분이 있다며 천천히 고쳐나갔다. 이상하게도 답이 빨랐고, 피드백도 빨라서 발전은 생각보다 빨리 됐다. 발전하는 자신을 볼 때마다 어째 승관이가 더 기뻐하는 눈치였고, 마지막 셀카를 몇 장 찍고 사진을 현상했다. 요새는 스마트폰으로 찍은 것도 현상이 되니까 편하네. 내일 오라는 말에 인사를 하고 승관이와도 헤어졌다. 집에 도착하니 공기는 싸늘했다. 원래 자신이 집에 들어서면 명호가 있었으니, 자신이 명호를 맞이하는 것도 오랜만이었다. 집에 오자마자 청소기를 돌리고, 전날 돌려두었던 빨랫감을 정돈하여 옷장 안에 넣었다. 그러고도 시간은 약간 남아서 저녁을 뭐 먹을까 하고 고민했다. 평소에는 건강을 해친다는 이유로 배달음식을 시켜 먹지 않았지만, 지금은 아무런 상관이 없었다. 퇴근하고 온 명호도 피곤하여 밥을 차릴 기력도 없을 터였다.
'형, 오늘 피자 먹을까?'
'피자? 평소엔 잘 안 먹잖아. 오늘 금요일도 아니고'
'그냥.. 안 될까?'
괜히 초롱초롱 눈을 빛내는 북극곰 이모티콘을 보내봤다. 이모티콘을 오랜만에 쓰는 거라 기분이 좋아진 명호였는지 쉽게 수락해줬다. 갑자기 귀여운 짓을 하네. 명호는 그렇게 생각하며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보인 것은 깨끗해진 집 안과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한솔이. 명호가 평소에 먹던 피자를 주문해 놨다며 웃는 한솔이를 본 명호는 하고 싶은 말을 삼켰다. 평소라면 운동을 하러 갔을 텐데, 피자는 건강에 안 좋다며 먹지 않을 텐데. 다만 말을 할 순 없었다. 눈치를 챘다는 말을 해봤자 의미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래서 명호는, 배달 온 씬피자를 먹으면서 정말로 오랜만에 먹는 맥주를 마셨다. 피자와 맥주를 먹으면서 나누는 대화는 평소와 같았지만, 명호의 마음속은 찢어지는 것 같았다. 저 손목에, 나에겐 안 보이는 하얀색 빛이 있겠지. 명호는 그 생각을 하면서 입에 들어가지도 않는 피자를 욱여넣었다.
"한솔아, 나 휴가를 쓰려고 해."
"..갑자기?"
명호의 말은 매우 갑작스러워서, 한솔이는 먹고 있던 씬피자를 놓칠 뻔했다. 이 순간부터 한솔이는 대충, 명호가 자신을 배려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꺼낼 수도 없는 침묵이 흐르고, 명호는 할 말을 머릿속으로 몇 번이나 곱씹고는 이야기를 꺼냈다.
"응, 나 지금까지 휴가 안 썼잖아. 그래서 지금 쓰려고."
한솔이는 속으로 굉장히 기뻐했지만, 그저 형이 쉬어서 좋다는 투로 이야기했다. 다른 이야기를 하면 침묵만이 이어질 것 같고, 이야기하기 싫었던 것을 이야기하게 될 것 같아서. 그날의 대화는 그렇게 잔잔하게 끝났고, 각자 씻은 후에 내일 어디를 갈 것인지 이야기했다.
"어디 가고 싶어?"
"..미술관."
연애할 때 자주 갔던 장소였다. 한솔이도 미술관을 좋아했고, 명호도 미술을 좋아해서 미술관에 자주 갔다. 그다지 큰돈도 필요하지 않았으며, 그림을 감상하다 보면 몇 시간은 수월하게 지나갔다. 그림을 다 보고 나서 어떤 그림이 좋았는지 이야기하는 시간도 즐거웠다. 어찌 보면 두 사람이 데이트 장소로 가장 많이 간 곳이었고, 어떤 전시회가 열리는지 찾아서 간 적도 있다. 이 근처에 있는 미술관을 검색하던 한솔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빛을 향했다.
[56 : 25 : 41]
순간 한솔의 표정이 굳어진 것을, 명호는 알았지만,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몇 분 있다가 이곳에 가자며 적당한 미술관 하나를 골라서 이야기했을 뿐이었다.
*
명호는 운동을 하고 오겠다며 밖을 나섰다. 동거하고 있는 아파트 1층에는 피트니스 센터가 있어서 명호와 한솔이는 거의 매일 그곳에서 같이 운동을 하고 왔었다. 한솔이는 오늘은 운동을 쉬겠다고 했고, 방에 들어가 어제 쓰던 다이어리를 펼쳤다. 펜을 잡고, 가만히 생각했다. 자신이 오늘 무엇을 했는지, 그 행위로 자신이 무엇을 느꼈는지 등을 떠올렸다. 심호흡을 몇 번 하고, 최대한 정갈하게 글씨를 썼다.
「 형, 나야 한솔이. 오늘은 가족들과 만났는데, 별말은 못하겠더라. 내가 형한테 말하지 못했던 이유와 비슷한 것 같아. 그래서 대화를 하는 데 정말 즐거워서 시간 가는 줄도 몰랐어. 별거 아닌 이야기에도 막 웃고 그랬는데, 가족들의 미소를 보니까 기분이 좋아졌는데 한편으로는 슬프더라. 며칠 후면 난 이 미소를 영원히 못 보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까... 그 후엔 승관이를 봤어. 마침 오늘 시간이 된대서. 그래서 혹시 셀카 찍는 법 좀 알려줄 수 있냐고 물었는데 셀카를 정말 잘 찍는 사람을 소개해줬어. 성함이 문준휘라고 했는데 셀카를 엄청나게 잘 찍으시더라. 그래서 배워왔는데 사진은 내일쯤에 현상이 다 된대. 나중에 붙여놓을게. 그리고 아까 형이 휴가를 받았다고 할 때, 난 형이 다 아는 걸 알았어. 형은 다 알고 있구나, 나는 형에게 이야기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형은 다 눈치를 챘구나. 그럼에도 이야기를 하지 않은 건 나를 배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 난 오늘 형의 출근길을 배웅해줄 수 있어서 좋았고, 퇴근하는 형을 맞이할 수 있어서 좋았어. 형이랑 같이 맛있는 음식을 먹고.. 평소에는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갑자기 엄청 특별해졌어. 내일은 미술관에 가니까 감상을 적어놓을게. 언제나 사랑해, 형. 」
한솔이는 다이어리를 덮었다. 다이어리를 덮을 때마다 슬픈 감정이 먹먹히 밀려온다. 눈시울이 시큰거리지만, 눈물 자국을 남기고 싶진 않았다. 울고 싶지도 않았다. 곧 있으면 명호가 돌아올 텐데 눈가가 붉어져 있으면 안 됐다. 그럼 명호는 걱정할 테고, 그럼 서로가 좋은 기분이진 않으리라. 한솔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최대한 눈물을 말렸다. 울 시간도 아까워, 최대한 즐겨야 해. 한솔이는 거실에 있는 소파로 가서 앉았다. 가만히 앉아서 자신의 앞에 있는 집을 보았다. 화면이 큰 TV와 작은 화분이 올려져 있는 아담한 하얀 책상. 밑에는 가끔 빨아줘야 하지만 포근한 러그가 깔려 있다. 소파도 푹신하고, 벽에는 명호가 취미로 그렸던 그림이 걸려있다. 아, 정말 이 집을 구했을 때 행복했는데. 꽤 넓은 집이어서, 우리만의 보금자리가 생긴 것 같아서. 한솔이의 눈에 다시 물이 차오르고, 견디지 못한 물이 떨어지려고 할 때,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어서 와, 형."
한솔이는 바로 일어나선 명호를 끌어안았다. 포옹은 표정을 숨기기 위한 가장 좋은 수단이었다. 지금 자신이 어떤 표정을 짓고 있는지, 형은 절대로 모르겠지.
*
[41 : 55 : 12]
눈을 뜨니 다음 날 아침이었다. 잠을 어떻게 잤는지도 기억나지 않았다. 자기 직전 머릿속에 있던 생각은 미술관에 간다는 생각뿐이었다. 지금 특별한 전시회는 열리고 있지 않았지만, 일상의 미술관을 가는 것도 즐거웠다. 평일에 두 사람이 동시에 쉰 적은 정말 오랜만이었다. 서로가 아끼는 옷을 입고 밖을 나섰다. 차를 타고 갈 수도 있었겠지만 걸어서 30분 정도인 거리였기에 걸어가기로 했다. 누군가는 시간이 아깝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지만, 손을 잡고 서로의 온기를 느끼면서 걸어가는 게 더 가치 있다고 생각하니까. 출근할 때마다 보고 다니던 집 앞의 풍경이었지만 걸어가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나무 한 그루도 새로 보는 것만 같고, 이런 곳에 이런 가게가 있었나 하는 생각을 자주 했다.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어? 라고 이야기해도 서로가 몰라서 웃어넘겼다. 나중에 집에 오는 길에 가서 먹어보자. 명호는 그렇게 말하며 한솔에게 붙었다. 춥다. 이런 실없는 말을 하는 동안 미술관에 도착했다.
두 사람은 관람할 때는 따로 관람한 후에, 서로의 감상을 쌓아뒀다가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했다. 같은 그림을 봤어도 본 시간은 서로 달랐고, 서로에게 이야기해 주고 싶었던 감상을 쌓아두었다. 이번에도 그랬다. 미술관은 생각보다 넓었고 사람은 적었다. 평일이니까 당연한 걸까, 이런 생각을 한 후에 서로 보고 싶은 것부터 봤다. 전시된 조각품을 보기도 했고 유화로 그린 풍경화나 추상화도 봤다. 아, 이 추상화는 형이 좋아하지 않을까. 한솔이는 그런 생각을 하며 그림을 볼 때마다 잠시 감상하고는 다이어리를 펼쳤다. 이 느낌이 생생할 때 최대한 남겨두고 싶었다.
「 이 그림은 형이 좋아할 것 같아. 노란색 물감이 메인이라서. 노란색은 희망의 색이잖아. 」
「 이 조각품 굉장히 예뻤어. 유리에 색을 입히고 이렇게 완벽하게 세공하기 위해 몇 년의 세월이 걸렸을까. 」
「 바다가 그려진 풍경은 예쁜 것 같아. 형이랑 바다에 놀러 가고 싶었어. 」
대충 이런 감상을 적어가며 이동했다. 마음에 드는 작품들은 사진을 찍었다. 타 관람객의 감상을 방해할 순 없었으므로 최대한 멀리서, 별로 많은 사진을 찍진 않았다. 다른 순서대로 작품을 감상하더라도 언젠가는 만나게 되어있으니까. 명호를 발견했을 때는 서로 웃고는 손을 맞잡았다. 그때부터는 같은 작품을 감상했다. 별다른 말 없이, 서로가 열심히 작품을 보았고 머릿속에 생각을 저장했다. 그러다 문득, 한솔이의 시선은 명호에게로 향했고 명호의 집중이 풀렸을 때, 한솔이가 말했다.
"형, 나중에 사진 찍어도 돼?"
"어떤 사진?"
"형이 작품 보고 있는 거."
그런 걸 왜 찍지, 명호는 물어보려다가 말을 삼켰다. 다 생각이 있겠지. 다음 작품을 봤을 때 명호는 머릿속에 드는 의문을 잊은 채 작품에 빠져들었다. 수채화로 그린 풍경화, 노을이 드리운 하늘에 그 빛을 받고 물든 바다. 파도가 치지 않는 바다는 온화해 보였고, 노을은 모든 것을 포용할 것처럼 온화해 보였으며 아름다웠다. 한솔이는 그 작품과 명호의 뒷모습을 함께 찍었고, 잠시동안 그 사진을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듯이 눈에 담았다. 미술관에 간 후 돌아오는 길에 시계를 보았다. 벌써 시간은 오후 2시를 넘었기에, 두 사람은 밥을 먹기로 했다. 평소에 자주 갔던 식당이었고, 메뉴도 서로가 좋아한 것들이었다. 건강에 좋을 것 같은 맛. 명호의 컵에는 녹색의 주스가 담겨 있었고 자신의 컵에는 푸른 음료가 담겨 있었다. 그래, 자주 이랬지. 마치 몇 년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연애할 때 월급을 탄 날에 가끔 오던. 그때의 그 기분. 한솔이는 천천히 먹으며 명호가 먹는 모습 또한 눈에 담았고, 그래서인지 둘의 식사는 평소보다 여유로웠다. 미술관에 가기 전에 가자고 이야기했던 카페에서도, 음료 한 잔을 마시는 데 2시간이 걸릴 정도였으니까. 두 사람은 미술관에서 봤던 작품들을 이야기했고, 사진 같은 것은 보여주지 않았음에도 어떤 그림인지 조금만 이야기해도 찰떡같이 알아들었다. 형도 미술관에 굉장히 집중해줬구나. 한솔이는 기분이 좋아진 채로 사진을 찾고는, 새로운 사진들을 부탁했다. 몇 장 안 되었기에 거의 즉석에서 인화된 사진까지 쥐어 들고는 한솔이와 명호는 기분 좋게 집으로 돌아갔다.
"어떤 사진 찍었어?"
"어..지금은 비밀."
나중에 아는 게 더 좋을 것 같아서. 한솔이는 어색하게 말을 돌렸다. 명호도 더는 묻지 않았다. 날은 벌써 어두워지려고 했기에 밝은 집으로 들어갔다. 어둠 속에서 은은하게 존재감을 과시하는 빛만큼 신경 쓰인 것은 없었으니까.
[30 : 56 : 24]
자고 일어나면 하루도 안 남겠네. 한솔이는 그렇게 생각하며 다이어리를 펼쳤다. 명호가 씻으러 간 틈을 이용해서였다. 명호가 없을 때 다이어리를 쓴 까닭은 이 다이어리가 지금 들키는 것을 원치 않았기 때문이고, 명호와 함께 있는 동안은 명호만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자신의 연인을 최대한 눈에 담고 싶었으니까.
「 사진을 인화해 왔어. 이 사진들을 보면서 내가 형이랑 본 것들을 기억해줘. 뒷모습은 작품을 보는 형이 너무 사랑스러워서 찍어 봤어. 오늘은 정말, 연애하던 시절로 돌아간 거 같아, 내가 취업을 하기 전에 시간이 많았을 때 놀았던 것처럼. 일하다 보니 서로 일이 바빠서 놀러 가지도 못했잖아. 그게 마음속에서 후회가 많이 됐었는데, 내가 곧 떠나려 하니 이러네. 이것도 나름 자비의 시간인 걸까? 아마도 내일 쓰는 내용이 마지막이 될 거라고 생각해. 그러니까..지금 하고 싶은 말들은 내일 전부 다 이야기할게. 천천히 봐줘, 사랑해 형. 」
그 후 스카치 테이프로 다이어리 뒷면에 사진들을 붙였다. 내일 어디 갈지는 정하지 않았지만, 어떤 곳에도 가지 않는 하루를 보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의 집에서 이야기들을 하자. 우리가 가장 공을 들인 곳이 여기고,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낸 곳이 이곳이니까.
*
[18 : 57 : 32]
24시간도 안 남았네. 아침마다 손목에 눈길이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일이면 이런 아침도 보낼 수 없게 된다. 오싹한 생각이 들어 밖으로 나갔다. 평소라면 기뻐했을 금요일이다. 내일은 주말이고, 주말에는 드디어 쉴 수 있으니까. 다만 아침의 분위기는 매우 조용했고, 한솔이보다 먼저 일어난 명호는 밥을 데우고 반찬을 꺼냈다. 언제나 먹었던 반찬과 언제나 함께 아침을 먹었던 사람. 평소와 다를 것이 없었다. 밥을 먹던 한솔이는 예전에 자신이 받았었던 질문이 떠올랐다.
"죽기 전 마지막 한 끼로 뭐가 드시고 싶으세요?"
난 그때 뭐라고 대답했더라는 중요하지 않다. 난 이제 정말로 마지막 한 끼, 최후의 만찬을 생각해야 했으니까.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것은 많았지만 감이 오는 것은 없었다. 그냥, 명호형과 먹는 거라면 뭐든 좋을 것 같다. 한솔이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랑 먹는 음식이 마지막 한 끼가 된다면 그 사실 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을까. 아침을 먹으면서 오늘은 뭐할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자신은 명호의 얼굴만 눈에 담을 수 있다면 되는데.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무언가의 행위를 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어졌다. 무료로 방영하고 있는 옛날의 영화를 하나 틀어놓고 손을 잡고, 얼굴을 마주 보고, 입술을 맞댄 후의 시간은 그 어느 때보다 빠르게 흘렀다. 어느새 노을이 졌고, 씻고 나서 먹은 저녁은 예전에 한솔이가 먹은 후 극찬했던 카야잼 토스트였다.
[10 : 31 : 04]
"형, 우리 사진 찍자."
"..잠옷 차림으로?"
한솔이는 고개를 끄덕였고, 상관없나 하고 생각한 명호가 자신의 머리카락을 정리하고 있을 동안 한솔이는 어제 인터넷으로 주문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냈다. 이건 바로 인화해서 출력까지 할 수 있으니까. 여행 가기 전에 살려고 리스트에 넣어놨던 물건인데 결국 여행은 가지 못했었다.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한솔이는 명호와 함께 포즈를 잡은 뒤 카메라 버튼을 눌렀다. 사진을 찍은 장소는 명호가 그렸던 그림 앞이었다. 그 후 한솔이는 방에 들어가 자신의 사진을 한 장 더 찍었다. 노란색 상의를 입은 후, 다이어리를 펼쳤다. 자신이 쓰는 마지막 다이어리가 될 터였다. 바깥은 어둠으로 뒤덮였고, 자신의 시간은 몇 시간도 남지 않았다.
[4 : 52 : 11]
「 명호형, 이제 마지막일 거 같아. 이제 잘 시간이 다가왔고, 카운트가 끝나기 전에 깨어있으면 고통스럽게 죽는다고 해서. ..아마도 일찍 자야 하지 않을까 싶어. 난 아직 죽고 싶지 않아.. 그래도 형이 내 몫까지 살아줬으면 좋겠어. 위에서 형을 계속 지켜보고 있을게. 내가 형을 수호하는 존재인 것처럼. 나는 형이랑 보낸 모든 시간 동안 행복했어. 형은 나한테 정말 많은 걸 해줬고, 형이 없었다면 난 무너져 있었을지도 몰라. 그만큼 나한테 형은 소중한 존재고. 지금 72시간을 우울하지 않게 버틸 수 있었던 것도 형이 내 곁에 있었기 때문이야. 형에게 슬픈 모습 보이기 싫어서, 형을 내 머릿속에 뚜렷하게 담고 싶어서. 그리고 형이 날 잊지 말아줬으면 했어. 사진을 찍은 것도 그 사진들을 인화한 것도 그 의도고 다이어리를 손글씨로 적은 것도 그 이유에서야. 내가 형의 기억에서 잊히는 것만큼 슬픈 일은 없을 거 같았거든. 이것들을 보고 날 떠올려줘, 나와 함께했던 시간을 기억해줘. 그거면 충분해. 내가 사라지고 나서도 형은 잘살아줬으면 좋겠어. 형, 정말 어떤 수식어로도 말하지 못할 정도로 사랑했어. 그리고 영원히 사랑해. 」
다이어리를 덮은 한솔이는 잠시 쉬다 침실로 들어갔다. 이제 잘 시간이었다. 아침을 맞이할 수 없겠지. 그런 생각을 하며 한솔이는 명호의 옆에 누웠다.
[1 : 22 : 08]
"한솔아."
명호가 자신을 부른 것은 거의 잠이 들락 말락 할 순간에서였다. 놀란 한솔이는 눈을 떴고, 명호는 한솔이에게 등을 보인 채로 말을 이었다.
"나, 잘살게."
그 말을 들은 한솔이는 눈물이 핑 돌았다. 명호가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는 말이었다. 눈이 아파져 왔다. 참아왔던 눈물이 자신의 볼을 타고 침대 커버를 적셨다. 명호는 등을 돌리고 한솔이를 마주 보더니 한솔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마지막으로 나눈 키스는 눈물의 짠맛이었다.
[00 : 00 : 52]
한솔이는 이미 자고 있었지만, 명호는 잘 수 없었다. 그럼에도 한솔이가 깰까 봐 열심히 자는 척을 했다. 몸도 뒤척이지 않고 가만히 생각했다. 아마도 곧, 자신의 옆에 있는 온기가 사라지겠지. 그런 생각이 드니 잠자리에 들 수 없었다. 사실 명호는 말하고 싶었다. 처음부터 눈치채고 있었다고. 잠을 자려고 누운 한솔이가 갑자기 일어났을 때 의심을 품었고, 회사를 쉰다고 했을 때 이미 다 눈치챘었다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다. 아침마다 손목을 바라보던 것도, 대화 중에도 무의식중에 손목에 시선이 가던 걸 누가 모르냐고. 자신도 한솔이와 추억을 쌓고 싶었기에 회사에 휴가를 신청했었다. 급작스러운 휴가라서 상사에게 혼이 나겠지만 상관없었다. 그럼 그만두면 되지. 이런 생각을 하던 명호의 옆에서, 온기가 사라졌다.
[00 : 00 : 00]
*
명호는 모든 것을 정리했다. 넓은 집은 자신만이 사는 집으로 변했다. 온기가 사라졌고, 그 아이가 좋아하던 카야잼은 반 이상이 남았다. 이제 이걸 누가 먹어야 할까. 명호는 그 생각 후에 반 이상 남은 카야잼을 버렸다. 카야잼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먹었다간 카야잼이 짜질 것 같으니까. 회사는 한솔이와 자신이 사귄다는 사실을 몰랐으니, 자신은 모든 것을 정리한 후 맞는 월요일에 출근을 해야 했다. 결혼을 하지 않았으니 상주가 될 수도 없구나. 임종을 지켜본 것은 자신인데. 장례식장에서 돌아온 후 명호는 모든 게 정리된 집 안에 들어섰다. 장례식장에선 너무 믿을 수 없는 일이라 눈물이 나지 않았어. 다만 자신의 연인과의 추억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집에 들어서니 눈물이 쏟아져나왔다. 소파에 앉아도 자신의 옆에서 영화를 보던 한솔이가 떠올랐고, 밥을 먹을 때도 자신의 맞은편에서 밥을 먹던 한솔이가 떠올랐다. 추억이란 너무 잔인하구나. 종일 울고 나서 기진맥진한 채로 침대에 누웠지만, 침대가 너무 넓었다. 이 침대가 원래 이렇게 넓었나 싶을 정도로.
아침은 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토스트를 구웠지만 구운 빵은 한 개뿐이었고, 준비한 접시도 한 개뿐이었다. 집에 남아있던 사과잼을 바른 토스트였지만 맛은 너무나도 짰다. 절반도 먹지 못한 토스트를 버린 후, 명호는 한솔이가 다이어리를 썼던 방으로 들어갔다.
"..이젠 볼 수 있겠지."
자신의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져 있었고 떨렸다. 이 정도로 울었나. 비소를 지은 명호는 의자에 앉아서 다이어리를 펼쳤다. 한솔이가 다이어리를 쓰는 모습을 봤지만 볼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 한솔이가 자신에게 남겼던 글과 사진을 보았다. 그래, 이걸 봤었지. 한솔아, 나도 여행 가고 싶었어. 마지막에는 자신의 그림 앞에서 찍었던 한솔이와 자신의 사진과 노란색 옷을 입은 한솔이의 사진이 붙여져 있었다.
「 노란색은 희망의 색, 희망을 품으며 살아줘 형. 」
*
일요일의 대부분을 눈물에 잠겨 보낸 명호는 다음 날 출근을 해야 했다. 회사 내에서는 자신의 연애를 아는 사람이 없으니 이야기할 사람도 없었다. 이야기하면 커밍아웃도 같이하게 되는 거니까. 슬픔은 나 혼자 가지고 있어야 하는구나. 명호는 그렇게 생각한 후 달력을 봤다. 11월 9일 월요일.
"..토요일에 내 생일이었어."
*
그 후 며칠의 시간이 지났다. 명호가 퇴근한 후 몇 시간을 눈물 흘리며 보낸다는 것은 변하지 않았지만, 회사에선 티를 내지 못했다. 회사에서는 최대한 덤덤한 척을 해야 했으며, 상사가 재미없는 농담을 쳐도 어느 정도는 웃어줘야 했다. 나중에는 집에서도 이렇게 되는 걸까. 소파에 앉아서 TV를 보며, 재밌는 장면이 있으면 웃을까. 밥을 혼자 먹는 게 익숙해질까. 넓은 침대에서 자는 것도 익숙해질까. 한솔이가 없는 삶에 익숙해지는 자신을 생각한 명호는 화장실로 향했다. 너무 슬퍼서 견딜 수 없었다. 나는 울 때도 화장실에서 숨어 울어야 하는 걸까. 최대한 울었던 자국이 남지 않게 명호는 고개를 숙이고 눈물을 방울지게 해 흘려보냈다. 시간이 길어지면 의혹을 살 수도 있으니 우는 것도 자제해야 했다. 이 짓을 언제까지 해야 할까. 5분 정도가 지난 후 명호는 휴대폰에 있던 시계를 보면서 나왔다. 보고서에 실수가 발생했으니 수정해라. 최근에 자주 오는 메신저 내용이었다. 실수가 잦아지긴 했네. 어질한 정신을 겨우 차리고는 명호는 세면대에서 손을 씻었다. 그 후 자신의 손목에서 뿜어진 빛을 가만히 응시하더니 자신의 손목을 다른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그래 봐야 뿜어져 나오는 빛을 숨길 수는 없었고, 명호는 손목을 부여잡고 한참을 울었다.
"나 한솔이한테 잘 살겠다고 했는데.."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