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Vernon RPS COLLABORATION
[솔정] 펠리컨
카피 / 글
"솔아 나는 너 죽을 듯 좋아해서 내 몸까지 줄 수 있어."
"저는 형이 저를 좋아하는 것보다 훨씬 더 형을 좋아해서,"
"심장까지 줄 수 있어요."
제 심장까지 줄 수 있다는 그놈은
펠리컨이었다.
"영식 엄마. 그거 들었어?"
"뭐?"
"우리 옆 동네에 혼혈 이사 왔대."
혼혈이 이사 왔다면서 작은 동네가 순식간에 떠들썩 해졌다. 웬 혼혈이 작은 동네로 이사 왔냐면서 사람들끼리 얘기하다 저 멀리서 누가 봐도 외국인처럼 보이는 사람이 걸어오는 것을 보고 대화를 중단했다. 손에 떡을 한 아름 쥐고 동네를 활보했다. 하나둘씩 말을 걸어보려고 그 소년의 머리를 쓰다듬기도 볼을 잡아당기기도 해봤다. 소년은 마다하지 않았고 떡을 다 돌리자 저 윗동네 무당이 사는 집으로 올라가려고 하던 찰나에 아주머니들이 팔을 잡으며 조심하라고 당부해 주었다. 슬쩍 웃으며 발걸음을 옮기는 소년이었다.
저 멀리서 소년이 오는 것을 지켜보는 무당집 아들이었다. 엄마, 이사 왔나 봐. 이 동네에 이사는 무슨. 잡귀겠지, 넌 이런 거 보지 말고 공부나 해. 근데 엄마 초인종 누르려고 하는데. 화려한 옷을 입고 있던 정한의 엄마는 당황하면서 정한 보고 나가보라고 말하였다. 긴 머리를 아래로 늘어뜨리며 바닥을 짚고 일어났고 현관을 나가 대문 앞까지 나갔다. 누구세요. 그 옆 동네 이사 왔는데요. 아, 들어오세요. 솔직히 정한이 안으로 들어오라고 한 이유는 대문 틈으로 보이는 얼굴이 너무 자신의 취향이라 그랬다. 정한은 소년이 전해준 떡을 손에 쥐었고 이름과 나이를 물었다.
"넌 이름이 뭐야?"
"최한솔."
"나이는?"
"… 열일곱."
"너 되게 젊구나! 나는 열아홉이야. 근데 너 진짜 잘생겼다."
고마워요. 근데 그쪽도 젊은…. 긴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며 한솔을 향해 살짝 웃어준 정한이었다. 하던 말을 멈추고 변경하여 말을 꺼낸 한솔이다. 형도, 잘생기셨어요. 고마워, 근데 나는 잘생겼다는 소리보다 예쁘다는 소리가 더 좋더라. 참고해. 고개를 살짝 숙이며 인사를 하고 언덕을 내려갔다. 붉어진 두 볼을 팔로 가려버린 한솔이었다. 최한솔을 꽤 부끄럼을 많이 타는 소년이었다. 한솔이 가는 것을 지켜본 정한은 굳어진 표정으로 대문을 힘은 힘껏 닫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엄마, 이사 온 얘 귀엽더라. 엄마 바쁘니까 나중에 와서 말해. 정한은 한숨을 픽 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가 카디건과 모자를 챙긴 뒤 집을 나섰다. 차라리 아까 그 애를 따라갈걸. 발을 질질 끌며 대문 밖을 나갔다.
색이 노랗게 변질한 버드나무가 흔들려 나뭇잎이 우수수 떨어졌다. 긴 머리 위에 나뭇잎이 올라왔고 머리 위에 살포시 앉은 나뭇잎을 손가락으로 털어냈다. 저 개울가에서 올챙이를 잡으며 놀고 있는 어린아이들이 있었고 그 사이에 최한솔도 있었다. 푸흡, 컥. 너무나 자연스럽게 합류돼있는 한솔을 보고 웃다가 사레들린 정한이다. 한솔은 아이들과 올챙이를 잡다 기침소리가 들리자 허리를 들고 고개를 돌렸더니 나무를 짚고 기침하고 있는 정한을 보고 다가갔다. 괜찮아요? 어 괜찮은데 너 생긴 건 안 그렇게 생겨서 되게 촌놈 같다. 또 볼을 붉힌다.
"몇 번 안 봤지만 너 나만 보면 볼이 빨개지더라. 내가 그렇게 좋아?"
"……."
서울 놈이라고 해서 말을 그렇게 잘 하는 것도 사교성이 좋은 것도, 또한 부끄러움을 많이 안 타는 것도 아니었다. 모든 건 서울 사람에 대한 환상이라고 볼 수 있었던 것 같았다. 한솔이 아무 대답이 없자 정한은 머리에 쓰고 있던 밀짚모자를 고쳐 쓰고 길을 걸어갔다. 정한이 앞을 걸어가려고 하자 정한의 바로 앞에서 비키지 않고 계속 서 있는 한솔이에 살짝 짜증이 났던 정한은 화를 내려고 했지만 훅 들어오는 살냄새에 숨을 헙하고 참았다. 뭐, 뭐 하는. 아. 벌레 붙어있어서요. 이번에는 반대로 정한의 볼에 홍조가 일었다. 나 얼빠 아닌데. 큰 눈동자를 한참이나 응시하다가 먼저 발걸음을 뗀 최한솔이었다. 먼저 가볼게요. 어, 어? 그래. 최한솔 앞에만 서면 침착하고 영리했던 윤정한은 아둔해졌다. 눈치가 빠르고 아닌 것은 아니었던 윤정한이 최한솔 앞에서만 자꾸 쌓아왔었던 것들이 무너져버린다. 아무래도 최한솔을 피해야 될 것 같다.
최한솔과 반대 방향으로 돌아갔다. 반대 방향으로 돌아가면 동네 작은 슈퍼와 그 위로 올라가면 정한의 집이 나온다. 동네에 친구도 없고 딱히 갈 곳도 없어서 정한은 집을 가는 것을 택하지 않고 그 아래 자리 잡은 슈퍼로 발걸음을 옮겼다.
"정한이 왔어?"
"할매 날씨도 더운데 선풍기 왜 끄고 있어."
"됐어, 곧 죽을 거. 더위 먹고 죽지."
"아 진짜 내가 그 소리 하지 말라고 했잖아. 요즘 백세시대인 거 몰라?"
"자식도 없는데 뭐 하러 살아."
"나 있잖아."
"그래 정한이 있지."
정한이 가게 할머니 어깨를 두드리며 말을 이어갔다. 할매 죽을 때까지 나 잊으면 안돼. 당연하지 착한 정한이를 어떻게 잊어. 나 안 착한데. 날도 더우니까 아이스크림 하나 꺼내서 먹어, 돈은 필요 없어. 응 할매 돈은 위에다가 둘게, 또 올게요. 돈은 필요 없다는 가게 할머니의 말을 뒤로하고 계산대에 천 원 한 장을 올려두고 간 정한이다. 정한의 가장 사랑하는 아이스크림 요맘때를 쥐고 가게를 빠져나왔다. 밀짚모자를 다시 고쳐 쓰고는 가파른 경사를 뚜벅뚜벅 걸어 올라갔다. 그렇게 몇 걸음을 떼고 난 뒤에 또다시 집에 도착했다. 집 앞에서 땅이 꺼져라 한숨을 퍽퍽 쉬고 있는 정한을 뒤로하고 집에서 싸구려 화장품으로 얼굴을 하얗게 칠함과 동시에 화려한 색들로 이루어진 옷을 입은 엄마가 급하게 뛰어갔다. 물론 지독하게 듣기 싫은 방울소리도 같이 들렸다.
얼마나 급하게 나간 건지 대문도 열려있었다. 정한은 엄마가 지나간 그 자리를 그대로 쳐다보다가 이내 집 안으로 들어갔고 온 동네에 다 들릴 정도로 문을 세게 쾅 하고 닫아버렸다. 다녀왔습니다. 아무도 없는 빈 집에 인사를 하였고 아까 다 먹은 요맘때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린 다음에 현관 앞에다 아무렇게나 벗어던져 널브러진 신발들을 무시한 채 뽈뽈 걸어가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지독한 싸구려 화장품 냄새가 정한의 방 안까지 베었다. 화장품 좀 바꾸지, 화장품에서 밀가루 냄새가 나. 정한은 바닥에 깔린 이불에 코를 박았다. 섬유 유연제 향기가 콧속으로 들어왔고 코 끝에 지독하게 맴돌던 화장품 냄새는 사라졌다. 갑자기 졸음이 몰려서 눈이 감기려던 찰나에 대문을 똑똑똑 노크하는 소리에 벌떡 일어난 정한이었다. 동네 할머니들은 그냥 들어오던데 누구지.
문을 열었을 때는 아까 보았던 최한솔이 보였다. 뭐야 또 너야? 아. 그냥 와봤어요. 왜 왔는데, 나 보러 왔어? 아니 그건 아닌데 제 또래 찾아보라고 하면 여기 오라고 해서. 아, 또 오지랖 넓은 할망구들이 알려줬구나. 뭐 들어와. 정한은 한솔을 자기 방까지 들였다. 여기 앉으라며 손바닥으로 팡팡 두어 번 쳤던 곳은 다름 아닌 자신이 현재 앉아있는 이불 위였다. 여기… 앉아도 돼요? 그럼 당연하지. 걱정 마, 우리 엄마는 나한테 관심 없어서 신경 안 쓰거든. 다리 아플 텐데 얼른 앉아. 정한은 숨을 고르다 문을 열어 바람이 통하게 만들었다. 혼자라서 심심했던 정한은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로 한솔에게 비밀을 하나씩 말하기를 권유했다.
"마침 심심했는데 잘 됐다. 우리 서로 비밀 하나씩 말하자."
"형부터 해요."
"나 게이야."
"알고 있어요, 저도 게이예요."
"이제 너 말해야지."
"전 미래에서 왔어요."
그렇구나. 정한은 전혀 믿지 않은 눈치였다. 솔직히 믿지 않을 만하다. 비밀을 말하기 싫어서 저런 순 거짓말 거짓말을 할 수도 있으니. 정한은 피식 웃었다. 너다운 말이네. 한솔은 꽤 진지했다. 정한은 바닥에 몸을 뉘었다. 그럼 네가 미래에서 왔다는 걸 보여줘, 그럼 그때 믿어줄게. 형은 이다음에 커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나는… 소설가. 왜요? 그냥 내 이야기를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어서? 정한은 고개를 천장을 바라보았다. 닿지 않을 걸 뻔히 알면서 손을 위로 뻗었다. 천장 위에 동그란 전등을 손에 쥐는 시늉을 하며 손가락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하였다. 원래 미래를 바꾸면 안 되지만 형이라는 바꿀 수 있도록 할게요, 만약 정말로 소설가가 되어있다면 저도 글에 넣어주세요. 음, 그래. 뭐 어려운 것도 아니니까. 근데 궁금해서 그런데 네 말을 믿는 건 아니고 내가 어른이 되면 뭐 하고 있어? 이런 말 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형은,
아마도 죽어있을 거예요.
그렇구나, 죽어있구나. 근데 사실이 아닐 수도 있으니 놀라지는 마요. 닮은 사람일 수도 있으니까요. 솔아 나는 시골 동네에서 살아왔지만 나처럼 생긴 애는 못 봤어 물론 도시는 어떨지 모르겠다만. 뭐 이 지긋지긋한 집에서 해방이라니 나쁠 건 없네. 정한이 팔을 힘없이 내렸다. 갑자기 몸을 일으키고는 한솔에게 방에서 나오지 말라고 한 뒤에 방을 나왔다. 방에서 나온 정한은 냉장고 문을 열어 색이 바랜 머그잔에 차가운 물을 따르고 홍차 티백을 넣었고 자신이 먹을 컵에는 차가운 물과 얼음 몇 개를 동동 띄었다. 차가운 물이라 우러나오기 까지는 시간이 꽤 걸려 그 시간에 부엌 의자에 앉아 대리석 식탁에 팔을 괴었다. 얼음을 티스푼으로 몇 번 톡톡 친 정한은 곧바로 얼음을 입안으로 넣었고 시원해지는 기분에 팔에 얼굴을 묻었다. 대리석이라 식탁에 닿은 팔이 시원해짐을 느꼈고 얼음까지 씹고 있어 찬기가 확 올라왔다. 그때 방 안에서 들리는 알람시계 소리에 화들짝 놀라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
한솔의 손에는 알람시계가 들려져 있었고 한솔이 시계를 만지자 뚝 하고 꺼졌다. 아, 미안해요. 울리길래. 시간을 확인해보니 벌써 세시였다. 아, 약 먹어야 되는구나. 정한은 한솔에게 티를 내어주고 다시 부엌으로 가 약을 집어삼켰다. 매끄러운 알약 표면이 목을 타고 흘러내려간다. 캡슐 알약 특유의 냄새가 입안에서 맴돌았고 얼음 하나를 입속에 털었다. 심장 안 좋아요? 응 갑자기 안 좋네… 어? 열린 방문 틈으로 한솔을 어깨를 으쓱거리며 정한에게 미래에서 왔다고 했잖아요.라며 짤막하게 말하고 홍차를 한 모금 들이켰다. 정한은 입을 아주 살짝 벌려 탄식을 뱉고 고래를 위아래로 약하게 흔들었다.
정한은 한솔을 아주 조금 믿어보았다.
***
정한이 한솔을 신뢰하기 시작했던 시점부터 한솔을 줄곧 따라다녔다. 옆에서 따라다니며 자신은 미래에 어떻게 되냐 죽기 전에 꿈은 이루고 죽냐 등 물어보았지만 다 말해주는 한솔이었다. 야, 네가 무당 하면 되겠다. 어차피 미래에서 왔으니까. 그럴까요? 이게 덥석 물어버리네. 근데 넌 무당 하지 마. 왜요? 그 얼굴로 무당 하는 건 너무 아까우니까. 한솔이 어이없게 웃었다. 그러자 정한도 살짝 웃어 보였다. 한솔아 너무 덥지 않아? 우리 저기 앞에 있는 카페 가서 아이스티 먹을까? 네. 정한은 저 앞에 있는 카페에 가자며 한솔에게 말하였고 다리가 아프다며 업어달라고 하였다. 당황하던 한솔이 이내 바닥에 한쪽 무릎을 꿇고 등을 보였다. 정말 업어줄 줄은 몰랐는지 한솔을 등을 손으로 두어 번 팡팡 치다가 말 들을 생각이 없던 것인지 미동도 없던 한솔이었기에 아래로 축 늘어진 머리카락을 귀 뒤로 넘기고 두 발을 바닥에서 떼고 한솔에게 업혔다. 나 무거울 텐데 괜찮아? 형이 절 업는 것보단 괜찮아요.
한솔의 말에 납득한 정한은 업힌 상태로 몸에 힘을 실었다. 한솔에게 장난을 치려고 힘을 준 것이었는데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냥 가뿐하게 일어나 버린다. 형 떨어지지 않게 조심해요. 어? 떨어지지 않게 조심하라면서 정한을 조금 더 안정적으로 들 수 있게 자세를 고쳐잡았고 종아리를 잡아 앞에 보이는 카페까지 달려갔다. 중간마다 스텝이 꼬여 한솔이 넘어질 뻔하였지만 중심을 바로잡았고 괜찮냐고 물어보며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정한은 한솔의 등 위에서 깜짝 놀라 소리를 지르다가 어느 정도 익숙해졌는지 한솔에게 더 빨리 달리라고 말하였지만 한솔은 다치면 안 된다고 뛰다가 멈추어 걸어갔다. 카페에 도착하였고 숨을 몰아 내쉬는 한솔에게 내심 미안한 정한이 땀을 닦아주며 마시고 싶은 거 사주겠다고 말하였다.
"그러면 저는 홍차요."
"응 알겠어, 그거면 됐어?"
"네."
"그러면 저기 가서 앉아있어. 주문하고 올게."
한솔은 정한의 말대로 의자로 가서 앉았다. 대충 등받이에 등을 기대고 손을 꼼지락거리며 정한을 기다렸다. 진동기를 가지고 돌아오며 홍자랑 레몬티 시켰다며 나오면 알아서 갖고 오라며 장난스레 말한 정한에 진지하게 받아들인 한솔은 알겠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한은 바지 뒷주머니에서 폴더폰을 꺼내 한솔에게 셀카를 찍자며 권유하였다. 한솔은 정한에게로 주춤거리며 다가오자 정한은 그 순간에 찍어버렸다. 정한은 찍힌 사진을 보며 배를 잡고 웃었고 한솔은 지우라며 다급하게 말했다. 웃음까지 흘리며 웃는 정한을 보자 한솔은 정한을 노려보았고 그때 진동기가 울려 음료를 가지러 한솔이 일어났다. 앉아있어요, 갔다 올게. 응. 흘리지 말고. 한솔이 음료 두 잔을 들고 걸어왔다. 나갈까요? 말 대신 웃음으로 대답하였다. 차가운 음료를 빨대로 쪽쪽 빨며 비포장도로 위를 걸었다. 솔아. 저요? 응. 여기 너 말고 누가 있어. 아, 왜요? 나 너 좋아해. 네. 근데 갑자기요? 응. 그냥 해본 말이야. 저도 형 좋아해요.
정한은 한솔을 좋아하지 않았다.
한솔은 정한을 좋아했다.
***
"솔아. 네가 나보고 죽는다고 했잖아."
"네."
"그거 맞는 것 같아."
"왜 그렇게 생각해요?"
"그냥 나 심장병 있거든."
"알고 있어요."
"넌 다 알고 있더라. 가끔 보면 무서울 정도로."
"미래에서 형을 봤거든요."
"남자친구는 생겼어?"
"그건 비밀이에요."
여름이 지나갈 무렵. 집에서 풍기는 싸구려 화장품 냄새가 싫어, 그렇다고 한솔의 집이 가기에는 뭐 해서 동네를 조금 걷다 보면 보이는 정자를 향해 걸어가 그 위에 앉았다. 정한은 한솔의 어깨에 기대어 한솔에게 말을 걸었지만 마지막으로 돌아오는 대답은 비밀이라는 말이었다. 정한은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리게 웃으면서 한솔의 팔을 만져댔고 감탄하였다. 솔아 너 팔 근육 장난 아니다. 열일곱 살인데 대박이네. 정한은 신기하다는 듯 자신의 팔뚝과 한솔의 팔뚝을 번갈아 만지면서 우와 따위에 감탄사를 남발하였다. 아 맞다 솔아. 너희 부모님은 뭐 하시는 분이야? 우리 엄마는 무당이야. 저는 엄마 얼굴을 본 적이 없어요. 항상 바쁘시거든요. 아, 솔이 많이 외롭겠네. 형이랑 같이 살까? 저 어린애는 아니지만, 좋아요. 꼭 같이 살아요. 그래 같이 살자. 정한은 한솔의 손에 깍지를 꼈다. 놀라 쳐다본 한솔 뒤로 정한은 정자 바닥에 몸을 뉘어 손깍지를 낀 손이 아닌 반대쪽 손으로 하늘에 팔을 쭉 뻗었다. 마치 밤하늘에 떠있는 별을 잡아보는 것처럼 말이다. 형은 누우면 자주 손을 위로 뻗으시네요. 응? 어, 으응. 소중한 사람이 별이 되었어요? 응, 소중한 사람이 별이 되어 빛을 내고 있어. 힘들겠다, 힘내라고 기도해 줘요.
한솔의 말에 푸스스 웃었다. 넌 가끔 날 웃기더라. 정한은 한솔의 손에서 자신의 손을 빼고, 별을 잡으려고 했던 손을 내리고는 자신의 가슴팍에 올려 눈을 감고 하늘에 기도했다. 일순에 조용해졌다. 매미가 짝을 찾아 울지도 않았으며 날아다니는 모깃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한은 기도를 끝내고 눈을 떴을 때 자신을 내려다보는 한솔이 보였다. 볼에 홍조가 올라온 모습이 보였다. 깊은 눈에 짙은 쌍꺼풀, 잡티 하나 없는 투명한 피부가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몰래 몸을 살짝 일으켜 한솔의 뺨에 손을 갖다 대었다. 정한이 형. 응 솔아 왜 불러. 예뻐요. 고마워. 키스해도 돼요? 응.
정한이 눈을 감고 있었을 때 한솔이 정한에게로 다가와 뒤로 넘어질 것 같은 모습에 허리를 자신의 팔로 잡았고 허리를 잡지 않은 반대쪽 손으로는 정자의 바닥을 손으로 짚었다. 한솔이 정한에게로 점점 다가왔고 이내 말캉한 입술이 긴장으로 인해 마른 입술 위로 포개었다. 정한의 입술에서는 딸기 우유 냄새가 살짝 풍겼다. 기분 좋은 향기에 서툴게 입술을 탐했다. 고개를 이리저리 꺾으면서 입술을 비볐고 정한이 숨을 쉬기 힘들어하며 신음을 살짝 흘렸다.
정한의 소리를 듣고 천천히 입술을 뗀 한솔이 눈을 뜨고 정한을 바라보자 그 모습은 가관이었다. 가지런했던 머리카락이 엉키며 엉망이 되었고 입술에는 누구의 액인지 모를 타액들이 엉겨 붙어있었으며 밤하늘의 달에 반사가 되어 반질거렸다. 그때의 정한의 얼굴을 보았을 땐 한솔 못지않게 얼굴이 빨갰었다. 솔아. 네. 나 너 좋아해. 저도요. 이번에는 진짜로 좋아해. 정한은 한솔을 바라보며 좋아한다고 귀에 피딱지가 앉을 만큼 고백하였고 그에 한솔도 정한이 좋아한다고 말하면 자신도 좋아한다고 대답하였다. 정한은 한솔을 끌어안으며 얼굴을 어깨에 파묻었다. 솔아, 사귈래? 좋아요. 나도 좋아, 근데 지금에서야 말하는 건데 너 진짜 어디서 많이 봤다. 그래요? 근데 이거 원래 말하면 안 되는 게 맞는데 미래에 형 남친 저예요. 아 그리고 저번에 말했었던 형 죽는다는 소리 있잖아요, 그거 그냥 해본 말이에요. 우와 진짜? 신기하다. 이런 우연도 있구나, 그래서 그런데 솔이 너는 나 얼마만큼 좋아해? 나는 내 몸까지 줄 수 있어.
"저는 심장까지 줄 수 있을 만큼,"
형을 좋아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