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st Vernon RPS COLLABORATION
[버홋] 김성현 외 11명
미분 / 글
그날은 비가 거칠게도 내렸었다. 그날은 이상하게 누가 볼까 봐 항상 닫아놓았던 커튼은 왠지 모를 기분에 활짝 열어놓았었고, 새벽 한 시가 다 되어가도 잠이 오질 않아 창가를 바라보며 생각에 갇혀 있었다. 다 부서져 뼈대만 남은 검은 건물들과 간간이 들리는 총성 소리. 그 시각과 청각이 무뎌질 정도로 깊게 생각에 빠져 있었었다. 그러다 그 창문 밖의 검은 건물들보다 더 검은 고양이가 황금빛 눈을 갖고 나와 눈이 마주쳤다. 예기치 못한 등장에 그 고양이와 한참 눈싸움을 하다 그 검은 고양이는 눈을 느리게 깜빡였다.
처음엔 호기심이었다. 아 좀 귀엽다? 그런 생각. 적적하다 못해 찢어지게 위태로운 이곳은 조용하면서도 시끄러웠다. 이런 곳에 저리 귀여운 고양이는 그냥 죽게 둘 수 없다는 그런 생각과 오늘은 누군가 죽는 모습이 보고 싶지 않아 황급히 옷을 챙겨입고 집을 나섰다.
집 밖을 나서자마자 괜한 선행인가하며 급 후회가 밀려왔지만 마른 두 다리는 멈추지 않았다. 빠르게 거리를 둘러보자 그 검은 고양이가 무너진 간판 위에 앉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도망이라도 갈까 천천히 다가가며 손등을 내밀었다. 일 미터 앞까지 다가가 손등을 내밀다 고양이의 코가 쿡하고 부딪혔다. 그 동물은 제법 복잡한 소리를 내더니 슬쩍 내 손등을 얼굴로 비볐다. 나는 그 버려진 간판에 앉아 고양이를 조심스레 쓰다듬자 고양이도 좋은지 갸르릉 거리는 소리를 냈다.
푹신했다. 얼마 만에 느껴지는 온기인지 내 무릎에 있는 이 조그마한 생명이 너무나도 사막의 오아시스 같아서 눈물이 찔끔 나는걸 간신히 억제했다. 녀석은 고분고분했다. 목 뒤를 긁어주면 그 손길을 따라 파고드는게 이 녀석도 사람의 손길이 간절했던 모양이다.
무릎에서 골골거리던 그 고양이는 폭신한 나의 손길을 받다, 갑자기 벌떡 일어나 버려진 간판의 가게로 뛰어 들어갔다. 그 고양이를 쓰다듬던 손길이 허공을 맴돌다, 예상치 못한 일에 당황스러워 나도 벌떡 일어나 가게의 앞까지 갔다. 다 부서져 형체를 알아 볼 수 없었지만 지금 앞에 서 있는 곳이 건물인것은 알 수 있었다.
겉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지만 안은 꽤 본래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살펴보니 갖은 적십자 모양과 알약이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은 약국이었던 것 같다. 다 부서진 콘크리트를 보니 사람의 흔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처음 만난 고양이의 이름을 알 턱이 없으니 나비야 하며 고양이를 찾자 안쪽에서 야옹하는 소리를 내었다. 둔해 보였던 고양이는 이럴 땐 어찌나 날쌘 건지 건물 기둥이 무너진 곳을 잘만도 파해쳐 들어간 것 같았다. 나비야, 집에 가자. 응? 얼른 나와. 대답은 야옹야옹하며 잘만 했는데 나오질 않았다. 그 동물이 들어간 곳은 꽤 깊숙하고 어두운 곳이라 무서움이 엄습해왔다. 그렇다고 해서 이 작은 생명체를 버리고 갈 깡도 되지 않았다.
들어가자마자 혹시 모를 상황에 챙긴 후레쉬를 켰다. 외부에서 빛 한점 들어오지 않았다. 안쪽으로 들어가자 야옹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졌다. 나비 여기 있어? 하고 바닥에 후레쉬를 비추다 바닥에 앉아있는 남성을 스쳐보았다. 등골이 오싹한 기분에 아무 소리도 못내고 정지해 있자 고양이가 야옹하며 다시 소리를 낸다. 나비야아아 진짜 제발ㅜㅜ 그냥 나와주면 안될까아아ㅜ 하며 애원에 가까운 소리를 내자 고양이도 시위하듯 더 큰 소리로 야옹하고 소리를 내었다.
그 좆같은 신까지 찾아가며 다시 그 곳을 비추자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겠는 군인이 보였다. 사흘전에 이 앞에서 총격이 있었던것이 기억이 났다. 죽었나 싶어 팔에 맥을 짚었다. 간신이 심장이 달려있는 듯한 맥박이었다. 아군이던 적군이던 죽어가는 인간을 외면으로 인해 또다시 죽이고 싶지 않았다. 나는 일말의 고민없이 그 거구의 남자를 들쳐매고 집으로 들였다.
이 남자를 침대에 눕히고 옷을 벗겼다. 목에는 여러개의 길이가 다른 군번줄이 주렁주렁 달려있었고, 상반신과 하반신엔 총알에 스쳐맞은듯한 상처가 있었다. 이 남자를 힘이 닿는 대로 치료하곤 그의 얼굴을 천천히 뜯어봤다. 입술은 허옇게 질려있었고 얼굴에 상처가 다분했지만 미모는 에이급이었다. 짧게 그의 상태를 파악한 다음에서야 숨을 크게 내뱉었다. 그 다급한 와중에도 고양이는 잘도 따라왔는지 침대 구석에 자리해 앉아 털을 혀로 고르고 있었다.
니 덕에 식구 두명이나 늘었는데 팔자 좋게 임마 털이나 고르고 있어. 동물이 알아 듣지 못할 뾰족한 말이었지만 괜히 고양이의 눈치를 보았다. 검은 고양이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는지 고개를 다른쪽으로 돌려 털 속으로 얼굴을 비비다, 이내 자리를 잡고 눈을 감았다. 크게 한숨을 내쉬자 몸안에 뭉쳐있던 잿덩어리가 빠져나가는 느낌이다. 갑작스레 공허해진 마음에 엄지 손가락에 자리한 굳은살을 살살 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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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남자가 다가와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다. 아마 그 사람은 나에게 신이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모두에게나 친절했고 모두에게 사랑받았었다. 그 사람은 순한 얼굴로 눈이 휘어지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는게, 그게 나에겐 처음이었다. 맨날 흠씻 얻어맞는 것이 일상이었고 누가 먹다 버린 것을 발견하는 날은 운수가 좋은 날이었다. 처음으로 나에게 따뜻하게 내미는 손길이, 나를 보며 짓는 미소가 참으로 눈부시게 빛난다고 생각했다. 움츠려들어 잔뜩 긴장해 있는 나를 이끌었다. 처음 피부로 느껴보는 고운 비단이었다. 부드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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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 눈을 떴는지는 모르겠다. 정신을 차려보니 다 꺼져가는 매트리스 위에 누워있었다. 옆으로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녹슨 스프링소리가 났고 몸은 뒤질듯이 아팠다. 몸은 진득히 침대를 원했지만 머리는 본능적으로 이 곳을 벗어나야한다고 외쳤다. 자리를 고쳐잡고 침대에 앉자 침대 모서리에 검정색 털뭉치가 눈에 띄었다. 얌마 너...라고 이야기 하고싶었지만 목에선 메마른 쇳소리만 났다.
응, 일어났어?
말랑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소리가 나는 곳을 쳐다보자 목소리보다 더 말랑하고 맹탕한 사람이 나이에 맞지않는 깜찍한 앞치마를 입고 문 앞에 서 있었다. 습관적으로 왼쪽 복부에 위치해 있던 권총을 꺼내려고 했지만 티셔츠의 감촉밖에 느껴지지 않았다. 당황해하며 티셔츠를 손으로 쓰다듬다 복부에 느껴지는 통증에 신음 소리를 내었다.
맞아, 거기 심하게 다쳤더라고. 이틀내리 잠만자길래 나는 뒤진 줄 알았어. 좀만 늦게 일어났어도 내가 당신 바깥에다가 버렸을꺼야.
분명 마지막 기억은 건물로 들어가 제정신 아닌 상태로 붕대를 둘렀었다. 눈 앞에 있는 남자는 경계심 가득한 내가 이상한 것 마냥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군부대의 임시 병동은 아니였다. 그랬다면 옆에 누구라도 누워있을텐데 내 옆엔 밍숭맹숭한 남자가 날 쳐다볼 뿐이었다. 주변은 또 어떠한가. 곳곳에 자리한 남자가 환하게 웃는 사진, 결혼 사진으로 추정되는 사진 그리고 조금 때가 탄듯한 소파가 침대 옆에 있었다. 다시 그 남자를 쳐다보며 내 기억을 더듬었지만 돌아오는 건 데이터 없음 뿐이었다.
내가 누구긴 생명의 은인이지. 배는? 안고파? 좀만 있어봐 뭐 먹을꺼 가져다줄께.
남자는 이 상황이 익숙한지 그 해괴망측한 앞치마를 입고도 쫑알쫑알 잘도 이야기 했다. 주방으로 짐작되는 곳에 콧노래까지 부르며 갔다. 대화를 나눌땐 어떠했는가. 감정 한스푼조차 들어가지 않은 미미한 그의 목소리 톤은 긴장을 고조시켰다. 작게 들려오는 그 남자의 콧소리는 나의 신경을 곤두세웠다. 이유없는 호의는 없다. 최소한의 보상을 바라는 것은 아닌가? 정신을 잃은 사이에 반정부군의 속셈에 걸려든것인가? 눈동자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도 방안이 나오질 않았다. 안 쪽 볼살을 이로 잘근잘근 씹어먹었다.
수프에 후추 뿌리는 편인가? 아님 그냥 먹어? 아니다 그냥 있는대로 먹어라 나도 이거 아끼는 후추라 나만 먹을 거거든.
무의식으로 후추를 넣어달라고 대답할 뻔했다. 그러지 못했던 것은 무의식의 통제 본능이었던 것 같기도 하고 졸음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분명 방금 잠에서 깨어났는데 쏟아질듯이 다시 잠이 몰려왔다. 뻑뻑한 눈을 느리게 감았다 떴다. 눈꺼풀이 힘겹게 마찰했다 떨어졌다.
얌마 너 먹으라고 수프 끓여놨는데 다시 자는거야?
후에 닥칠 상황들을 예측할 수 없었지만 당장의 달콤함이 늪으로 빠져 나의 모든 곳을 꼼꼼히 채워졌으면 한다.
집에 가고싶다. 야 힘빠지게 그런 이야기 하지마. 말이라도 못하냐. 억울하다는듯 다시 되물어 오는 그의 목소리는 주변을 맴돌다 금세 흩어졌다. 나도. 들리지도 않을만큼 작게 속삭이는 목소리는 그의 귓가에 닿지 못했다.
고요했다. 귀가 찢어지도록 폭발음과 괴성이 가득했던 이곳은 인간의 희생과 이기심으로 고요했다. 그는 생각에 잠긴듯 입을 앙 다물다 이내 벌떡 일어나 나의 앞에 섰다. 그는 피가 날 정도로 입술을 이로 괴롭히고 있었다. 나는 물음표를 띄운채로 그를 쳐다보자 그는 굳은 표정으로 목에 걸려있는 여러개의 군번줄을 나에게 건냈다. 순간의 행동에 울음과 화가 치솟았지만 그에게 무엇 한마디라도 화내지 못했다. 그러기엔 그의 표정이 나보다 더 죽을상이었으니까.
최한솔. 니가 생각하는 그런 의미 아냐. 그냥. 너라면 왠지 나보다 더 보관을 잘 할것같아서. 그리고 너 목도 무식하게 굵으니까 쉽게 빼앗기진 않을거 아니야. 그러니까. 울지말고. 응?
울지말라고 말하는 목소리에도 떨림이 있었다. 단순히 목걸이를 내미는 행위가 나에겐 너무 좆같고 반복되는 행위라 눈물이 가득찬 눈가를 벅벅 비볐다. 이미 내 목에 걸려있는 여러개의 군번줄을 손가죽이 패이도록 꽉 쥐었다. 그는 내가 그 군번줄을 받지 않자 하나씩 나의 목에 걸어주었다. 눈물이 뺨을 갈랐다.
여기에 내것도 있으니까 잃어버리지 말고. 최한솔 내가 지금 5개 주는거니까 니꺼까지 합해서 14개야. 내가, 내가 나중에 너 만나면 다 셀꺼니까. 절대 잊어버리지도 말고. 함부로 어디 두지도 말고. 그만 울어 새끼야.
…
하사 김성현, 최한솔 중사께 보고 올립니다. 금일 22시 47분 하사 김성현은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야 김성현!
… 따라 833작전 수행하겠습니다.
그는 거수경례를 하며 나를 쳐다보았다. 분명 이 좆같은 작전은 자결과 같은 작전이다. 체면 차리기 바쁜 정부는 군부대에게 우리보다 월등히 수가 많은 적군의 기지에 침입하라는 말도 안되는 작전. 그렇게 한명씩 폭탄을 안고 간 것이 12번. 그리고 남은 한번과 우리 둘. 야, 팔아파. 어서 내려 해줘. 병사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작전 철수한다. 니가 무슨 지휘관이야. 남은거 우리 둘 뿐인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그냥 가지마 제발 성현아 진짜 그러지마.
병사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작전 수행하겠습니다. 고마웠고, 군번줄 잃어버리지 말고. 간다.
자꾸 멀어져만가는데 절은 다리로 할 수 있는게 없었다.
김성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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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눈을 번쩍 떴다. 다급히 주변을 살폈다. 저번과 같은 하얀 천장. 옆엔 조금 때가 탄 소파. 탁상 위에 올려져 있는 그 남자의 결혼 사진, 그리고 환하게 웃고 있는 그의 독사진. 고작 한 번 본 익숙함에 안도를 느끼는게 좀 웃겼다.
그 남자는 침대 옆 의자에 앉아 고개를 꾸벅꾸벅 숙이며 단잠에 빠져있었다. 남자는 굶고 다니지는 않는지 볼살이 빵실하게 채워져 있었지만 조금 말라보였다. 머리카락은 최근에 잘랐는지 그 남자의 뒷목에 샤프심 같이 뾰족한 머리카락이 까슬까슬하게 남아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어 툭 튀어나온 입술이 답지않게 볼록하니 귀여워서 올라가는 광대를 억지로 삼켜냈다. 배에 힘이 들어가자 복부에 통증이 느껴졌다. 고통스러운 신음을 내뱉자 그는 침을 흡하고 삼키며 고개를 들었다. 이불에 떨어진 침자국은 모른척 해주기로 했다.
으… 일어났어? 배는? 안고파?
이사람은 일어나기만 하면 배고프냐고 묻는게 꽤 단순한 사람인 것 같았다. 그 사람은 노인네같은 신음을 내며 기지개를 켜다, 멍 때리며 허공을 응시했다.
저 며칠 동안 잤습니까?
내 질문에 그 사람은 내 인중 언저리를 뚫어져라 쳐다보다 거의 일주일 잤지? 용케도 밖에 내다 버리지는 않았어하곤 굉장히 자랑스러운 표정으로 이를 내보이며 웃었다. 이걸 뭐 칭찬해줘야 할지 아님 응원의 한마디를 해야 하는지 고민하다 침묵으로 그를 독려했다. 수프 가져다 줄께 배고프겠다. 방을 나가는 그는 필요이상으로 즐거워보였다. 아직까지 나에게 이상한 짓을 하지 않은 것을 보니 나에게 해를 가할 사람처럼 보이진 않았다. 행여 그가 나를 해한다고 해도 나에게 호의를 배풀어준 사람이었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아주 조금은 봐줄 의향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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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나의 보호자인 것 마냥 그는 나에게 한숟갈씩 수프를 떠먹여주었다. 한번도 이러한 손길을 받아본 적도 없으면서 꽤 익숙하게 행동하는 내가 웃기기도 했고 먹이는 행위에 집중하느라 입술을 잔뜩 모은 이 앞에 남자도 좀 웃겼다. 이 남자와 이야기 하면서 얻은 그의 특징은 한번에 두가지 일을 동시에 하지 못하는 것이다. 본인의 정체가 뭔지, 본인이 어떻게 나를 보게 되었는지, 그 고양이는 어떻게 했는지, 본인이 얼마나 나를 끌고 왔을 때 힘들었는지를 쏟아내듯이 이야기하다가도 숟가락을 내 입에 넣으려고 하면 말이 툭하고 끊겼다. 그 순간에 피식 웃다가 숟가락으로 이마를 때리길래 웃음도 간신히 참고 있었다.
권순영이라는 남자는 전쟁이 나기 전부터 이 지역에서 살고 있었다고 말했다. 전쟁에 군인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부모님들이 어영부영 급하게 결혼을 올렸고 강제적으로 이루어진 결혼덕에 이 남자와 결혼했던 상대는 전에 만났던 남자를 찾으러 나갔다가 돌아오지 않았다고 이야기했다. 그렇게 된건 3년이 조금 넘었다고 했다.
수프 그릇이 바닥을 보일 때쯤 그 검은 고양이가 침대에 사뿐히 올라와 털을 골랐다. 그 남자는 침대의 검은 뭉탱이를 보더니 응 나비도 밥줄까?하고 물었다.
고양이 이름을 나비라고 지었습니까?
음… 보통 고양이 이름은 나비 아닌가?
전 이 고양이를 네로라고 불렀습니다. 검은 고양이 네로.
참 속세에 찌든 군인답게 구린 작명이네. 근데 얘랑 구면이야?
구리다는 말에 잠깐 미간이 꿈틀거렸지만 거기에서 그쳤다. 그는 익숙하게 물그릇과 고양이 밥 그릇을 채워줬다. 나비인지 네로인지 아님 아예 다른 이름인지 하는 그 고양이는 냄새를 킁킁 맞다 조금씩 먹었다.
구면이라고 하면 구면입니다. 구해주다가 여기 맞았습니다.
나는 왼쪽 복부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나의 말을 도왔다.
저는 검은 고양이하면 네로생각나서. 그리고 이름 같은걸 깊게 생각할 시간도 없었고.
그 남자는 고양이의 먹는 모습을 멍하니 쳐다보며 으응…하곤 고개를 맥없이 끄덕였다. 아마 내 이야기를 흘려 듣고 있는 모양이었다.
총질하는 한가운데에서 저 쥐꼬리만한 애가 팔자 좋게 털이나 고르고 있길래 얼른 주워서 품 안으로 넣었습니다. 솔직히 도망갈 것 같았는데 가까이 다가가도 멀뚱하게 쳐다보고만 있더라고요. 그러다가 고양이에 한 눈 판 사이에 여기 옆구리에 맞았습니다.
이젠 내 말이 귀에도 들어오지 않는지 대꾸도 않았다. 그 남자는 무릎을 모아 그 사이로 턱을 괴곤 꿈벅꿈벅거리며 고양이의 섭취 과정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집 안이 조금 추운지 귀 끝이 조금 벌게져 있었다. 목이 다 늘어난 티셔츠를 입은 탓에 그 남자의 쇄골과 목 부분이 훤히 보였다. 밖을 자주 나가진 않은지 허여멀건한 피부에 침을 삼킬 때마다 상하운동을 하는 목젖. 쭉째진 눈꼬리에 꽤 날렵한 턱선까지. 한 개도 동글동글한게 없었는데 그가 가진건 모두 동글동글, 말랑말랑했다.
권순영은 눈꺼풀이 무거워지는지 눈을 느리게 껌뻑거리다 이내 무릎에 볼이 눌리게 머리를 기댔다. 손목이나 발목, 허벅지 같은 걸 보면 살집이 있는 몸이 아니었는데 볼살은 꽤 붙어있는게 신기했다. 지금 보니 눈 밑이 어두침침한게 아마 잠을 많이 못 잔 모양이었다. 찝찝함 없이 깔끔한 내 몸과 볼때마다 바뀌어있는 상처 위에 거즈를 보면 왜 잠을 못 잤는지 알 것 같아 괜히 가슴 언저리가 시큰거렸다.
아까 환기를 한다면서 열어놓은 창문 덕에 집안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권순영의 머리칼을 간지럽혔다. 바람이 쌀쌀한지 권순영은 몸을 작게 웅크리다 부르르 떨었다. 저렇게 잠들면 감기걸릴텐데. 몸이 아파 침대 밖을 나가지 못하는 내가 한심해지는 순간이었다. 잠시 생각에 빠지다 권순영이 잠든 소파 앞으로 몸을 틀었다. 움직이자 배에 있는 상처가 시큰거렸다. 나는 바람과 등을 진 채 그를 그림자로 가두었다. 그는 아직도 떠도는 공기가 차가운지 다리를 감싸고 있는 손끝이 빨겠다. 덮고 있었던 이불로 권순영을 감싸니 추위로 찌푸렸던 얼굴이 다시 말랑한 얼굴로 돌아왔다. 언제 올라왔는지 그 고양이는 검은 머리통으로 내 허벅지를 부비다 내 다리 사이로 들어와 고롱거렸다. 나는 그 뜨끈한 목덜미를 어루만져주다 일렁거림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