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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Vernon RPS COLLABORATION

[부솔] 시간여행

콩 / 글

...관! 부승관! 승관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귀에 꽂고 있던 이어폰을 뺐다. 이어폰을 뺀 승관이 보게 된 것은 뛰어온 것인지 가쁜 숨을 내쉬고 있는 민규였다. 승관은 나머지 한쪽 이어폰을 빼고는 횡단보도 앞에 섰다. 있지, 민규야. 승관은 신호등을 바라보며 민규에게 말하였다. 어응? 민규는 자신의 풀어진 신발끈을 묶으며 승관의 부름에 답하였다. 그거 알아? 저 신호등의 빨간불이 5번 동안 바뀔 동안 너 기다리고 있었어. 민규는 고개를 들어 승관을 째려보았다. 그냥 너 늦었다고만 말해도 되는 거잖아. 승관은 민규의 말에 싱긋 웃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아씨, 신발끈 다 안 묶었다고. 어쩔. 민규는 신발끈을 다 묶지 못하고 승관에게 뛰어갔다. 

 

"와, 진짜 너무해 너."

"어쩔, 네가 늦게 왔잖아."

 

민규는 승관의 대답에 반박하지 못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반박 못하네. 승관은 민규가 못보게 웃고는 민규의 옆으로 갔다. 아 김민규 그렇다고 먼저, 아! 누군가와 부딪힌 건지 승관은 자신의 어깨를 잡고 뒤를 돌아보았다. 저기, 어라. 승관은 뒤를 돌아보자마자 보이는 얼굴에 의문을 가지고 물었다. 저희 어디서 본 적 있어요? 승관의 말을 들은 그 사람은 못 들은 척하고는 오른쪽으로 달려갔다. ... 뭐야, 아는 사람? 몰라, 어디서 많이 봤는데. 승관은 민규의 말에 대충 대답하고는 오른쪽으로 걸어갔다. 근데 아까 저 사람 우리 학교 교복 입고 있지 않았음? 

 

"아, 그래서 어디서 많이 본건가?"

"그런듯. 그게 아니면 어디서 봤겠어."

 

하긴. 승관은 민규의 말에 수긍하고는 다시 걸어갔다. 야, 근데 지금 몇시임? ...8시. 망했네. 

 

**

 

3반은 2층, 8반은 3층. 8반이었던 민규는 계단을 두세칸씩 올라갔다. 승관은 숨을 삼키고는 뒷문을 열었다. 반에 있던 아이들은 승관이 뒷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뒤를 돌아보았다. 좋은 아침. 응, 너도 좋은 아침! 승관의 웃음과 함께한 아침인사에 반 아이들 대부분이 승관에게 웃으며 대답하였다. 승관은 그런 아이들이 다시 앞을 볼 때까지 웃고 있다가 입꼬리를 내리고는 자신의 자리로 갔다. 맨 끝분단 뒷자리던 승관은 짝꿍이 없는 옆자리에 가방을 올려놓고 엎드렸다. 승관이 엎드리자마자 앞문이 열리며 선생님이 들어왔다. 조금만 늦었으면 진짜 지각이네.

 

"엎드린애들 다 깨워라. 전학생 왔으니까 깨워 좀."

 

선생님의 말씀에 엎드려있던 아이들이 곧바로 일어났다. 승관은 곧바로 일어나지는 않았고 천천히 일어났다. 천천히 일어나 선생님의 옆에 서 있는 아이를 바라보았다. 어린왕자같은 머리를 한 아이, 교복 셔츠는 다 풀고 안에 검정티를 입은 아이. 아침에 봤던 사람이랑 똑같다. 뭐야, 전학생이였어? 승관이 의문을 가지며 생각하고 있을 때 전학생의 입이 열렸다. 어, 최한솔이라고 합니다. 간단한 소개. 한솔이라는 아이는 그렇게 말하고는 승관을 쳐다보았다. 뭐야, 나 기억하나?

 

"한솔이는 저기 반장 옆에 앉아. 반장, 어딨어."

 

아, 네. 승관은 손을 들며 대답했다. 한솔은 승관이 손을 들자마자 승관의 옆으로 걸어갔다. 승관은 급하게 자신의 가방을 옆 가방걸이에 걸고는 자신의 옆자리에 앉는 한솔을 바라보았다. 어딘가 익숙한 얼굴이다. 어디서 본적이 있나, 진짜? 승관이 뚫어져라 한솔을 쳐다보자 한솔은 고개를 돌려 승관을 쳐다보았다. 어, 잘생겼다. 승관은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며 한솔에게 말을 걸었다. 저기, 안녕. 안녕. 한솔은 그렇게 짧은 대답을 하고는 엎드렸다. ...얘도 멀쩡한 애는 아니구나. 

 

--

 

점심시간을 알리는 종이 친지 5분이 지났다. 승관은 조금 늦게 끝난다는 민규와 석민의 문자를 받고 조용히 창밖을 바라보았다. 벌써 밥을 다 먹은 것인지, 아니면 밥을 안 먹은 것인지 모를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축구를 하고 있었다. 승관은 한참이나 그들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어, 얘 왜 안가. 승관은 종이 친지 몇분이 지났는데도 계속 엎드려있는 한솔을 흔들었다. 죽었나? 승관이 조금 세게 흔들자 한솔이 조금씩 뒤척거렸다. 죽지는 않았구나. 승관은 한숨을 쉬고 한솔의 어깨를 살짝 치며 말하였다. 한솔아, 점심 종 쳤어. 승관이 그렇게 말하며 한솔을 흔들어 깨웠지만 한솔은 조금도 뒤척거리지 않았다. 이어폰을 끼고 있어서 못 들은 건가. 승관은 조심스럽게 한솔의 이어폰을 빼고는 말하였다.

 

"한솔아, 점심 종 쳤다니까."

 

그제야 한솔은 조금씩 뒤척거렸다. 승관이 그렇게 몇번을 더 반복했을 때 한솔이 고개를 들었다. 한솔은 시간을 확인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워, 승관아. 한솔은 그렇게 말하고는 반을 빠져나갔다. ... 쟤 진짜 이상하네. 한솔이 나가고 몇초뒤에 바로 민규와 석민이 반으로 들어왔다. 죄송, 체육때문에 지금 끝남. 괜찮은데, 그냥 매점가자 오늘은. 그래!

근데 내가 한솔이한테 내 이름을 알려준 적이 있나?

 

**

 

한솔이 승관에게 고맙다고 말한 지 약 2주가 지났다. 그 2주 동안 한솔과 승관은 그저 그런 간단한 얘기들만 나누었다. 

나 샤프 좀. 어, 여기. 고마워.

노트 한 번만 보여줄래? 여기. 고마워, 한솔아.

이런 간단한 대화였다. 사실, 승관과 한솔은 완벽한 정반대인 사람이었다. 조용한 사람, 활발한 사람. 그저 흘러가는 데로 사는 사람,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사람. 승관과 한솔은 정반대였다. 

2인 1조 조별과제는 이런 둘을 함께 하게 만들었다. 선생님은 정하기 귀찮다며 짝꿍끼리 하라고 하였고, 그로 인해 한솔과 승관이 함께 하게 되었다. 다음 시간이 점심시간인가. 승관은 선생님의 말씀이 끝나자마자 한솔의 팔을 툭툭 건드리며 작게 입 모양으로 말하였다. 점심시간에 각자 할 거 정하자. 한솔은 고개를 들고 승관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다시 고개를 내리고는 엎드렸다. 승관은 그런 한솔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거기, 뒤에. 집중 안 하냐."

 

승관은 선생님의 말씀에 곧바로 앞을 쳐다보았다. 반 아이들이 작은 소리로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승관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돌려 옆을 바라보았다. 한솔은 아까 그 자세 그대로 엎드려있었다. 진짜 이상한 애라니까.

 

--

 

"한솔아, 내가 발표할까 그럼?"

 

그래, 그럼 내가 이거 할게. 한솔과의 역할분담은 꽤 잘 진행되었다. 오래 걸릴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르게 끝났고 서로에게도 만족스럽게 역할분담이 되었다. 띠링. 아, 미안. 승관은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 메시지를 보았다. [언제끝나 이석민 배고프다고 난리야] 교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민규의 문자였다. 승관은 한숨을 쉬고는 타자를 몇 번 치고는 일어났다. 미안, 나 먼저 갈게. 나머지는 조금 이따가 정하자. 한솔은 승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빨리 가자, 나 배고파. "

"아, 알겠어."

 

승관은 그렇게 말하고는 교실 안을 쳐다보았다.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할까? ... 아니다.

 

--

 

야, 근데 너 짝꿍 전학생 맞아? 점심을 먹고 가위바위보에서 진 석민이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뽑으러 갔을 때 민규가 물었다. 맞는데. 승관은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하늘을 쳐다보았다. 비 오겠다. 승관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민규가 물었다. 걔 그때 걔잖아. 너랑 부딪힌 애. 승관은 잊고 있었다는 표정을 짓고 민규를 바라보았다. 그러네, 근데 왜 익숙했지? 승관은 민규의 그 말에 대답하고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전학생인데 왜 익숙하지. 

 

"뭐해, 음료수 사 왔어."

 

포도 내거. 민규는 석민이 음료수를 건네자마자 포도를 가져갔고 오렌지를 승관에게 주었다. 나 오렌지 안 먹잖아. 아, 맞다. 승관은 오렌지를 주는 민규에게 말하였다. 민규는 다시 오렌지를 석민에게 주고는 석민이 들고 있던 사과맛을 다시 승관에게 주었다. 아 저 미친놈. 석민은 그런 민규를 째려보고는 오렌지맛을 들고 승관과 민규사이에 앉았다. 아까 무슨 얘기했어? 석민의 질문에 민규는 처음부터 끝까지를 말했다. 이걸 말해서 뭐하게. 민규의 말을 끝까지 들은 석민이 마시던 음료수를 내리며 말하였다.

 

"어릴 때 만난거아니야? 둘이 같은 초등학교였다거나.“

"야, 초등학생 때 얼굴이 그대로겠냐?"

 

아, 맞네. 그럴 수도 있겠구나. 승관은 그런 석민과 민규를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토독, 토독. 민규와 석민이 얘기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물방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승관이 하늘을 보자 비올거같던 하늘에서 물방울이 떨어졌다. 야야, 비 온다. 승관의 그 말이 끝나자마자 물방울이었던 비가 폭포처럼 쏟아졌다. 아 미친 뛰어!

 

--

 

"오늘 비 온다는 말있었어?"

"없었는데, 우산 가져옴?"

"가져왔겠냐."

 

난 가져왔는데. 승관은 그렇게 말하는 민규를 째려보고는 머리를 털었다. 잠깐 맞으며 뛰어온 건데 머리가 방금 샤워하고온것처럼 젖어버렸다. 아 진짜 짜증나. 나 그냥 교실갈게. 승관은 그렇게 말하고는 계단을 올라갔다. 쟤네는 뭐 명호한테 가겠지. 승관이 그렇게 생각하며 교실 문을 열었다. 일찍 온김에 한솔과 더 얘기할까 했지만 한솔은 교실에 없었다. 뭐야, 얘 어디 갔어? 승관이 한솔이에 대해 앞자리에 앉아있는 아이한테 물어보자 아이는 모른 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어디 간 거야. 승관이 그렇게 생각할 때 점심의 끝을 알리는 종이 쳤다. 종쳤는데 왜 안 와.

 

종이 치고 몇 분 후에 선생님이 들어오고, 더 몇 분 후에 한솔이 들어왔다. 한솔은 대층 죄송하다는 말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승관은 그런 한솔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앞을 바라보았다. 어딜 다녀왔길래 쫄딱 젖어있는 거야.

 

--

 

종례끝, 아 승관이는 나 좀 보자.

점심시간 이후로 수업시간은 수도 없이 많았지만 점심시간 이후로 교실에 들어와 계속 자는 한솔때문에 그 어떤 말도 할 수 없었다. 종례가 끝날 때까지 한솔은 일어나지 않았다. 승관은 죽은 건가 싶어 한솔의 뒤통수를 쳐다보았다. 그렇게 쳐다보다가 승관은 선생님의 말씀에 앞으로 나갔다. 종례 끝, 이라는 문장이 끝나자마자 반에 있던 아이들은 재빠르게 가방을 챙겨 나갔다. 한솔은 그때까지 자고 있었고 비는 계속해서 쏟아져 내렸다. 

 

선생님이 승관을 부른 이유는 단순하게 선생님의 서류를 함께 정리해주라는 이유였다. 승관은 민규에게 문자를 남기고는 선생님과 서류를 정리하였다. 승관은 가끔 자신에게 질문을 해오는 선생님의 말씀에 웃으며 대충 대답하였다. 그렇게 몇번을 더 질문하고, 대답하고를 반복하다가 선생님의 입에서 한솔에 대한 얘기가 나왔다. 승관아, 아까 한솔이 왜 늦게 왔는지 아니? 아니요, 저도 잘 모르겠어요. 선생님은 승관의 대답에 그래, 라는 말만 하고 다시 서류를 정리하였다.

 

"어, 선생님 다했어요."

 

선생님은 승관에 말에 고맙다고 말하고는 자신의 서랍에서 사탕 한주먹을 승관에게 주었다. 비 많이 오니까 조심히 가고. 네, 안녕히 계세요. 승관은 그렇게 말하고 교무실을 빠져나왔다. 승관은 교무실을 나오자마자 창문밖을 바라보았다. ... 갈수나 있을까. 승관은 작게 한숨을 쉬고는 교실의 앞문을 열었다. 뭐야, 얘. 승관은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한솔에 놀라 혼잣말을 내뱉고는 조심스럽게 교실안으로 들어갔다. 쟤 아직도 자? 승관은 혹시나 죽었나 싶어 한솔의 어깨를 두드렸다. 

 

"한솔아, 일어나."

 

한솔은 승관이 어깨를 두드리자마자 고개를 들어 승관을 쳐다보았다. 어. 한솔은 승관의 얼굴을 잠깐 쳐다보다가 입을 열었다. 미안. 아니야, 미안할 건 없어. 한솔과 승관은 몇 분 동안 아무 말 없이 서로를 바라보았다. 저기, 안가? 아, 가야지. 한솔의 말에 승관은 가방을 챙겨 밖으로 나갔다. 몇 분 동안이나 본거지. 승관은 그렇게 생각하며 계단을 내려왔다. 이상하게 걔 얼굴만 보면 아무생각이 안 들어. 

 

"아 맞다. 비 오지."

 

승관은 정문 밖으로 보이는 웅덩이들에 한숨을 쉬며 핸드폰을 꺼냈다. 김민규한테 오라고 하면 화내겠지. 그냥 뛰어갈까? 승관이 그렇게 다짐하고 정문 밖으로 발을 내밀자 바로 옆에서 우산이 튀어나왔다. 우산? 승관은 뭔가 싶어 고개를 돌려 옆을 쳐다보았다. 옆에는 우산을 뻗고 있는 한솔이 서 있었다. 이거 쓰고가. 너는? 나는 우산 가져왔어. 한솔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가방에서 또 다른 우산을 꺼내 피고는 앞으로 걸어갔다. 

 

"그럼 잘가."

"어, 어 잘가 한솔아."

 

승관은 한솔이 정문을 나갈 때까지 가만히 있다가 우산을 피고 걸어갔다. 검은색 우산. 손잡이에는 최한솔 이라는 석자가 쓰인 스티커가 붙어있었다. 오늘 비 오는 거 알고 있었나. 근데 왜 2개나 들고 온 거지?

 

**

 

그다음 날, 승관은 민규에게 먼저 간다는 말을 남기고 평소보다 일찍 학교에 왔다. 승관은 어제 한솔이 빌려준 우산을 꼭 쥐고는 뒷문을 열었다. 뭐야, 얼마나 빨리 오는 거야. 뒷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한솔에 조금 당황했지만 금방 진정하고 한솔의 우산을 주었다. 고마워. 한솔은 승관이 건넨 우산을 가방에 넣고는 웃었다. 비 안 맞았으면 된 거지. 

 

"근데 너 비 오는 거 알고 있었어?"

 

한솔은 승관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대답했다. 응, 알고 있었어. 하긴 김민규도 가져왔는데. 승관은 한솔의 대답에 금방 수긍하고 자리에 앉았다. 분명 쟤한테 할 말이 있었는데. 승관이 한솔에게 할 말이 뭐였는지 생각하고 있을 때 한솔이 승관에게 말을 걸어왔다. 승관아, 우리 조별과제 조사 언제 할까. 물음표는 없었지만 확실하게 물어보는 말투였다. 

 

"다음 주 주말?"

"그래, 어디서 할래."

"도서실? 카페? 아니면..."

 

... 우리 집에서 할래? 이번에는 확실하게 물음표가 있는 물어보는 말투였다. 어? 승관은 잠깐 당황하였지만 금세 고개를 끄덕였다. 승관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본 한솔은 자신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번호. 어? 번호 알려줘야지. 아, 맞다. 승관은 한솔의 핸드폰에 자신의 번호를 치고는 전화 버튼을 눌렀다. 그 버튼을 누르자마자 승관의 핸드폰이 시끄러운 벨 소리를 내며 울렸다. 저장할게. 승관의 말에 한솔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핸드폰을 다시 책상 서랍에 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기! 승관은 자신이 말해놓고 자신의 입을 가렸다. 아무 생각 없이 나온 말인데. 한솔이 고개를 돌려 승관을 쳐다보았다. 왜?

 

"저기, 점심 같이 먹을래 오늘?"

 

승관은 애써 웃으며 물어보았다. 한솔은 잠깐 고민하더니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 그래. 한솔은 그렇게 말하고는 교실을 나갔다. 한솔이 나가고 몇분이 지나서야 반 아이들이 천천히 들어오기 시작했다. 

뭐지, 가슴이 원래 이렇게 빨리 뛰나?

 

--

 

한솔이랑 같이 먹어도 괜찮음?

당연하지.

 

승관이 교실 문밖에서 석민과 민규에게 먼저 말을 하자 석민과 민규는 괜찮다며 고개를 끄덕였다. 석민과 민규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교실 문이 열리고 한솔이 나왔다. 안녕. 한솔이 나오자마자 석민은 웃으며 한솔에게 인사했다. 얘가 걔야? 민규의 귓속말에 승관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근데 우리 급식 안 먹을 건데 괜찮아? 민규의 말에 한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가자! 어, 어? 

 

"... 이석민 쟤 오늘 왜 저래?"

"친구 만나서 신났나보지..."

 

--

 

미안, 쟤네가 좀 시끄럽지. 승관은 한솔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한솔의 옆에 섰다. 한솔은 그런 승관에 웃으며 대답했다. 아니야, 난 괜찮아. 승관은 그런 한솔을 바라보다가 한솔의 팔을 잡고 매점을 빠져나왔다. 저기 앉아있자. 승관은 벤치 하나를 가르치고는 한솔을 그곳으로 이끌었다. 한솔은 벤치에 앉아 운동장을 바라보았다. 승관은 그런 한솔을 바라보다가 저 뒤에 뛰어오는 민규와 석민을 바라보았다. 미쳤나. 

 

"야, 왜 우리 빼고 가는데."

"너희가 너무 시끄러워서."

 

와, 우리가 언제 시끄러웠다고. 민규는 그렇게 구시렁거리며 한솔의 옆에 앉았다. 석민은 승관의 옆에 앉았다. 평소에는 3명이 앉아도 공간이 널널했던 벤치가 한명 더 앉았다고 좁아졌다. 근데 한솔아, 너 이사 온 거야? 조용했던 정적을 깬 것은 석민의 질문이었다. 석민의 질문에 한솔은 조금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응, 이사 왔어. 언제? 올해 1월. 전에는 어디서 살았어? 이 지역 말고 다른 지역에서 살았어. 으음, 그렇구나. 석민은 그제야 만족했는지 입을 닫았다. 

 

"여기 말고 다른 지역에서 살았다고?"

"응, 왜?"

"아니, 승관이가 너 익숙하다고 했거든."

 

어? 아니 쟤는 왜 쓸데없는 말을 하는 거야. 승관은 속으로 민규를 욕하면서 한솔을 쳐다보았다. 한솔도 놀랐는지 그 말 이후로는 아무 말이 없다. 사람을, 잘못본거 아닐까? 하긴 그러겠지? 민규는 한솔의 말을 듣고 또 바로 수긍하고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김민규 바보야? 석민이 민규를 향해 소리치자 한솔이 소리내어 웃었다. 뭐야 얘 이런 거 좋아하나.

 

"아니거든, 최한솔 넌 또 왜 웃어!"

"아니, 그냥 웃음이 나왔어."

 

야, 부승관 나 그렇게 쳐다보지 마라. 민규의 마지막 말에 승관과 한솔, 석민 모두가 웃음이 터졌다. 아니 뭐가 웃긴 건데! 민규만 빼고.

 

--

 

그날 이후로 한솔은 쭉 우리와 함께 점심을 먹었다. 급식실을 가는 것보다는 매점을 더 자주갔지만 한솔은 항상 함께했다.

어느 날은 민규와 석민이 동아리 때문에 같이 점심을 못먹었다. 승관은 한솔과 단둘이 매점에 가서 먹을 거를 대충 고르고 매점과 가장 가까이에 있는 벤치에 앉았다. 4명이서 있다가 2명이 빠지니까 허전하긴 하네. 그러게. 한솔은 승관의 말에 대충 대답하고는 하늘을 쳐다보았다. 왜 이렇게 하늘만 보는 거야? 승관이 아무의미 없이 한솔에게 물어보자 한솔이 고개를 돌려 답하였다. 

 

"예쁘잖아."

 

하긴, 예쁘지. 승관의 그 말 이후로 몇초동안의 정적이 이어졌다. 이제는 이런 정적이 있어도 편하고 그리 어색하지 않은 사이가 되었지만 승관은 계속 대화를 이어나갈 만한 주제를 생각해냈다. ... 아, 맞다. 승관은 그제야 생각난듯 한솔을 쳐다보며 말하였다. 그때, 내 이름 어떻게 알았어? 승관의 질문에 한솔은 고개를 들어 승관을 바라보았다. 그때가 언제인데. 아니 그때, 내가 너 점심시간에 깨워줬을 때. 아. 한솔은 승관의 질문에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 명찰 보고 알았는데."

 

아, 나 명찰이 있었구나. 승관은 이제서야 궁금증이 풀린 건지 머리를 한번 긁적이고는 땅을 쳐다보았다. 난 또 우리가 아는 사이인데 나만 기억 못하는 줄 알았네. 

 

**

 

"한솔아, 어디로 가면 돼?"

 

오른쪽? 아, 알겠어. 한솔에게 직접적으로 물어보고 며칠이 더 지나 한솔과 잡은 약속날짜가 다가왔다. 한솔의 집에서 하기로 했는데. 생각보다 자신의 집과 먼 한솔의 집에 속으로 욕을 하며 한솔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초인종 소리가 들리자마자 현관문이 열리고 편한 모습을 한 한솔이 나왔다. 들어와. 한솔은 학교에서와는 다르게 안경을 쓰고 있었고, 바지는 교복바지가 아닌 운동복을 입고 있었다. 다른 사람 같아. 

 

"어디서 할까?"

"난 상관없어. 네가 편한 곳에서 해."

 

그래. 한솔은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의 방처럼 보이는 곳에 승관을 데리고 갔다. 한솔은 다른 의자를 꺼내 자신의 의자 옆에 두었다. 여기 앉아. 승관은 자신의 가방을 내려놓고 한솔의 옆에 앉았다. 분명 학교에서랑 똑같은데 왜 기분이 이상하지. 승관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한솔이 어떤 종이를 보여주었다. 이거 내가 조금 한 거인데, 봐볼래? 승관은 한솔이 건넨 종이를 한번 훑어보았다. 이대로 가도 괜찮을거같은데.

 

"너 이거 예전에 해본적있어?"

"어?"

"아니, 너무 좋아서. 이거 이대로 해도 괜찮을거같은데."

 

승관이 그렇게 말한 이유는 귀찮음 절반, 진심 절반이었다. 이렇게 잘했는데 굳이 내가 또 뭘 해야 하나, 싶기도 했고 이 정도면 좋은 평은 받겠다, 싶었다. 승관이 그렇게 말하자 한솔은 놀란 표정을 하고는 승관을 바라보았다. 그럼, 우리 이제 뭐 해? 어... 뭐라도 먹을래? 한솔의 말에 승관은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시킬게. 뭐 먹을래?"

"떡볶이...?"

 

그래. 한솔은 그렇게 말하고는 방을 나갔다. 승관은 한솔이 방을 나가자마자 책상에 올려진 공책을 쳐다보았다. 이런 거 함부로 보면 안 되는데, 방에 들어오자마자 궁금했다. 학교에서는 공책을 꺼내지도 않으면서 책상에 놓인 수많은 공책에 승관은 어이없어했다. 승관이 그 수많은 공책들중 제일 위에 있는 공책의 표지를 넘겼다.

 

[5월 3일 / 실수했다. 아직 서로 모르는 사이인데 이름을 말해버렸다. 눈치 못챘을까? 그럴리가 승관이는 눈치챌거다.]

[6월 7일 / 승관이가 물어봤다. 대충 대답하긴 했는데, 눈치챘을까?]

[6월 18일 / 내일 승관이가 온ㄷ]

 

"승관아, 시켰어."

 

어, 어? 그래 나갈게. 승관이 마지막 장에 있던 문장을 다 읽기도 전에 방문이 열리고 한솔이 얼굴을 내밀었다. 승관은 얼른 공책을 덮고 그 자리 그대로 두었다. 뭐지, 뭐지? 뭐야 진짜?

 

--

 

승관은 한솔과 먹은 떡볶이가 어디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게 먹었다. 떡볶이도 다 먹고 둘이 이런저런 대화를 하니 어느새 바깥이 어두워져 있었다. 자고 갈래? 한솔은 창밖을 바라보는 승관에게 물었다. 어? 승관은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잠깐만. 한솔이 일어나고 승관은 숨을 내쉬었다. 최한솔 잘 때 다시 봐야겠다. 

 

"승관아 이거 옷."

"어, 응. 고마워."

 

승관은 그렇게 웃으며 말하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검은 츄리닝. 똑같은 옷이다. 승관은 그런 생각을 하며 옷을 벗었다.

 

--

 

승관아, 그럼 불 끌게.

 

한솔과 승관은 영화 몇편을 보다가 한솔의 방으로 함께 들어갔다. 승관은 바닥에, 한솔은 침대에 누워 눈을 감았다. 승관은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하였다. 최한솔 잠들면 바로 확인하는 거야. 승관은 시간이 지나 상체를 살짝 올려 한솔이 잠에 들었는지 확인했다. 승관이 살짝 일어나도 가만히 있는 한솔에 안도의 한숨을 쉬며 조심스럽게 책상 앞으로 가 제일 밑에 있는 공책의 표지를 열어보았다.

 

[1월 16일 / 모르겠다. 그날 이후로 잠을 못자서 석민에 의해 잠에 들었을 뿐인데 눈 뜨니까 고등학생이 되어있었다. 뭐지?]

[1월 18일 /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승관이를 볼수있겠지?]

[2월 12일 / 큰일이다. 승관이랑 고등학교가 다른걸 이제야 깨달았다. 어쩌지?어쩌지어쩌지어쩌지?]

[2월 18일 / 원래라면 승관이랑 석민이, 민규랑 생일파티를 했겠지만 이번 생일은 가족이랑 함께했다. 보고싶다.]

 

맨 마지막에 있던 공책은 그게 끝이었다. 승관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2번째로 위에 있던 공책의 마지막 장을 펼쳐보았다.

 

[5월 2일 / 집을 구했다. 학교랑 멀지만 그래도 괜찮다. 승관이랑 같ㅇ]

 

"... 부승관?""

 

승관은 뒤에서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공책을 들고 한솔에게 다가갔다. 이게 다 무슨말이야? 한솔은 눈을 끔뻑거리다가 놀란 표정을 짓더니 승관이 들고 있던 공책을 뺏었다. 줘. 승관은 어쩔 수 없이 한솔에게 그 공책을 다시 주고 물었다. 이게 다 무슨 말이냐고. 한솔은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사실 미래에서 왔어. 뭐? 승관은 한솔의 말에 믿을 수 없다는듯이 대답했다. 말도 안 되는 소리잖아 그건.

 

"진짜야, 그게 아니면 내가 그날 우산을 왜 가져 왔겠어. 그날 너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고."

 

그 말을 듣자마자 승관은 한솔의 말을 믿게 되었다. 한솔은 승관의 표정을 보고는 한숨을 쉬고 옆에 앉으라고 말하였다. 승관이 한솔의 옆에 앉자마자 한솔은 승관의 어깨에 기대었다. 잠깐만 이러고 있어 줘. 승관은 한솔의 말에 가만히 있었다. 몇 분 동안을 그상태로 있다가 승관이 입을 열었다. 

 

"왜, 지금으로 온 거야?"

"나도, 나도 모르겠어. 그날 눈뜨니까 지금이었어."

"그날이 무슨날인데?"

 

한솔은 승관의 말에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너 죽은 지 3일되는날. 어? 내가 죽어? 승관은 한솔의 눈을 쳐다보았다. 한솔은 승관의 눈을 쳐다보며 말하였다. 22살 7월 14일에 죽어. 그래서, 그런 거야. 한솔은 그렇게 말하고 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승관은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다가 한솔을 껴안아버렸다. 승관의 행동에 승관도 놀랐지만 승관은 놀란 티를 내지 않고 계속 한솔을 안았다. 

 

"... 8월이면 나 미국가."

"뭐? 그럼 우리 어떻게 만난 거야?"

"20살때 나 한국에 돌아와서 만났어. 우리 사귀고 사귄 지 2년째 되는 날 그런 거야."

 

한솔의 말에 승관은 혼란스러웠다. 저, 한솔아 우리 지, 지금은 좀 잘까? 승관의 말에 한솔은 고개를 끄덕이고 침대에 누웠다. 승관은 한솔이 누운 것을 보고 침대를 내려와 자신의 잠자리에 누웠다. 내일 다시 말해봐야겠다.

 

--

 

"... 한솔아, 뭐해?"

 

아침밥. ... 아침이라기에는 너무 늦지 않았나. 승관은 그렇게 생각하며 거실로 나왔다. 승관이 거실에 나오자마자 한솔이 토스트 2개를 들고 승관의 옆에 앉았다. 자. 승관은 한솔이 준 토스트를 한입 베어 물고 한솔에게 물었다. 새벽에 말한 거 있잖아. 응. 나 어떻게 죽었어? 승관의 질문에 한솔은 잠깐 생각하다가 토스트를 한입 베어 물고는 말하였다.

 

"교통사고."

"아, 교통사고?"

 

... 그러면 내가 그날 밖에 안 나가면 안 죽어? 어? 한솔은 승관의 물음에 당황해 대답했다. 아마, 안 죽을걸? 그래? 승관은 토스트를 몇 번 더 먹다가 입을 열었다. 그럼, 그날 안 나갈게. 이제 알았으니까. 승관의 말을 들은 한솔은 고개를 끄덕였다. ... 나 좀이따가 집에 갈게. 그래.

승관은 1시가 되자마자 자신의 짐을 챙겨 한솔의 집을 나왔다. 

 

**

 

그날이 있고 한솔과는 예전 상태 그대로였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석민이나 민규나 반 아이들이 없을 때 서로 껴안고 있는다 정도였다. 석민과 민규가 승관에게 한솔이랑 무슨 일 있었냐고 물어보면 승관은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엄청 고민하고 또 생각했다. 그렇게 그들이 그렇게 지낸 지 1주일, 2주일 그리고 한 달이 지났다.

 

8월 4일. 한솔이 미국에 가는 날짜이다. 그걸 들은 석민과 민규는 가서도 연락하라고 계속 말하였다. 한솔과 마지막으로 헤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연락 안 하면 죽는다 라는 말만 내뱉었다. 한솔은 알겠다며 웃고는 승관의 옆에 섰다. 

 

"마지막이야 승관아."

"마지막은 무슨. 어차피 우리 만날 거잖아."

 

승관의 말에 한솔이 살짝 웃으며 승관에게 안겼다. 승관은 그런 한솔을 안아주다가 한솔의 얼굴을 자신의 얼굴과 마주 보게 하였다. 잘살고, 알겠지? 승관의 말에 한솔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웃었다. 승관은 한솔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다가 한솔의 입에 입을 맞추었다. 한솔은 승관이 입을 떼자마자 승관의 귀에 속삭이고는 승관의 품에서 빠져나왔다. 

 

"그럼, 그때 보자."

"잘가, 최한솔."

 

승관은 애써 웃음 지으며 한솔에게 손을 흔들었다. 그들의 마지막은 아니지만 그들의 마지막 인사였다. 

 

 

 

승관아, 1월 16일 학교 앞에 있는 횡단보도 앞에서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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