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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Vernon RPS COLLABORATION

[홍솔] 제페토의 피노키오

밀레 / 글

지수의 기상시간은 늘 일정했다. 여름에는 푸르게 하늘이 밝아 올 때 쯤이고, 겨울에는 해가 뜨기는 커녕 별조차 아직 돌아가지 않을 시간이었지만 그래야만 했다.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 지수는 늘 일어나 물 한 잔을 마시고, 기지개를 켠 후 졸음이 완전히 쫓아질 때까지 기다렸다. 침대에서 내려오는 것은 그 다음이다. 나무바닥을 걸을 때 시끄러운 소리가 나지 않는 푹신한 슬리퍼를 신고 일곱 걸음이면 지수가 그토록 아끼는 '인형'이 있는 방에 다다른다.

 

인형은 아름답고 정교했지만 매일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지만이 비로소 원하는 의도대로 움직여 주었다. 먼저 관절마다 기름칠을 해 주어야 했다. 인간과 이질감이 없도록 정교하게 깎아진 관절의 마디마디는 틈이 없다싶이 했다. 마찰은 움직임에 제약을 줄 뿐만 아니라 뼈대 사이를 깎이게 했다. 소중한 인형에 흠이 생기는 것은 안 될 말이었다.

 

인형은 인간보다 관절이 많았다. 부드러운 척추의 움직임을 구현하는 데에는 그보다 훨씬 많은 조각들이 필요했다. 식사를 하지도 않은 지수가 온 신경을 끌어모아 소중한 관절들에 기름칠을 다 해주고 나면 발목과 정강이 사이, 옷을 갖춰입으면 태가 나지 않도록 홈을 파 놓은 곳에서 태엽의 손잡이를 꺼냈다. 12시간을 온전히 활동하기 위해서는 120번의 감김이 필요했다. 온통 고요한 와중에 울리는 태엽 감기는 소리는 그닥 유쾌한 것이 아니라서 지수는 늘 이걸 어떻게 자동화시킬지를 고민했다.

 

몇 가지 이론은 세워졌지만 실행할 수는 없었다. 이번 인형은 지수에게 꽤나 소중한 것이라 다시는 움직일 수 없게 되면 스스로 오랜 날들을 슬퍼할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검증되지 않은 방법은 사용할 수 없었다. 이미 망가진 시제품이 손에 꼽을 정도였다. 이 귀찮은 과정들이 결국은 이 사랑스러운 인형을 위해서였다. 정확히 120번, 인형이 안정적으로 가동될 수 있는 횟수를 채우고 나니 손목이 뻐근했다. 스위치는 가슴의 한 가운데에 있다. 인형이 눈을 떴다.

 

 

 

"조슈아."

 

"응, 버논."

 

 

 

인형의 이름은 버논이다. 가장 아름다운 것을 만들기 위해 하루 온종일을 몰두했던 때, 그날따라 두근대는 심장에 잠이 오질 않아 책을 뒤적이던 밤이었다. 지수의 서재에는 낯선 언어로 적힌 책들이 많았다. 전부 인형들에게 이름을 지어주기 위해서였다. 그 책의 겉표지는 붉은 색이 짙게 드러나는 자주색이었다. 벨벳의 촉감을 닮은 재질의. 먼지가 쌓여 빛을 잃었던 것을 그날따라 무슨 변덕인지 자연스럽게 집어들었다. 그리고 찾은 것이다.

 

버논, 버논. 부드럽게 시작해서 조금은 단호하게 마무리되는 어감, 무슨 뜻인지는 몰라도 그저 합당한 것을 찾아 헤메였던 시간이 아깝지 않도록 예쁜 단어를 찾아내었다. 어느 나라 말인지도 몰랐다. 무슨 뜻을 가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혹여라도 파멸, 절망, 멸절을 뜻한다 하더라도 저는 그 이름을 썼을 것이다. 버논은 그 자체로 의미있고 아름다웠다. 지수는 느릿하게 깜빡이는 눈꺼풀을, 그 굴곡에 휘어버린 햇살이 눈동자에 닿아 제게로 반짝이는 것을 보다 입꼬리를 휘었다.

 

 

 

"오늘도 같은 시간이네요. 고생했겠어요."

 

"고생이랄게 있나."

 

"다음에는 별을 보고 싶은데."

 

"안 돼. 밤에는 자야지."

 

 

 

다정한 대화가 오간다. 타인이 본다면 사랑하는 연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만한 모습이었다. 눈을 뜬 이후 바로 다리에 힘이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버논이 책상 위에서 내려오기 위해서는 지수의 목을 안아야만 했다. 얌전히 바닥에 두 발이 닿고, 몇 번 땅을 디뎌 보고, 발목까지 두어 번 돌린 후에야 지수의 목에서 손을 풀어낼 수가 있다. 낯설던 것도 처음 몇 번 뿐이지 '기억'이 쌓인 지금은 버논이 스스로 팔을 벌려 지수를 기다리고는 했다.

 

인형이 어떻게 스스로 사고를 하고 기억을 쌓아갈 수 있는지, 인격이 부여될 수 있는지는 정확히 밝혀진 바가 없다. 다만 육체를 만들고 인형사가 이름을 붙여주면 그것은 각각의 삶을 부여받게 된다. 이 특별한 능력은 외로운 삶을 한 사람들에게 선물처럼 친구를 만들어주게 되었다. 다만 모두가 버논과 같은 것은 아니었다.

 

지수는 오래 전부터 나무를 깎고 이름을 붙였다.  예순 네 번만 태엽을 감아도 하루종일 버틸 수 있는 인형들을 위해서였다. 그 인형들은 지수 자신보다 더욱 필요한 이들을 위해 양도되었다. 멜리사도 있었고, 바울도 있었고, 때로는 솜사탕도 있었다. 전적으로 어린 고객님의 취향을 반영한 이름이었다. 지수는 자신의 일에 보람을 느꼈다. 인형은 손이 덜 가 관리가 쉬웠지만 애완동물, 혹은 친구와 비슷한 역할을 하거나 그 이상을 해냈다. 지수는 늘 행복한 사람들만 보았다. 자신도 행복한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깨닫고 만 것이다. 발 밑에 깔린 톱밥을 치울 때 바라본 자신의 굳은살이 잔뜩 박힌 손이 결국은 모두 타인의 행복으로 치환되었다는 것을. 오직 혼자만이 겪어야 하는 외로움을 처음으로 느낀 그 날 이후 석 달 열흘을 지수는 오로지 집 안에서만 보냈다.

 

지수는 피그말리온이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그 역시도 지수의 책장 속에 있던 인물이다. 그는 사랑의 여신의 은총을 받아 딱딱한 대리석 조각상을 부드러운 살결을 가진 여인으로 만들어낼 수 있었다. 하지만 지수는 인형사였다.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하지 않았다.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이 외로움을 견디게 해 줄 친구를 만들고자 했다. 가장 아름다운 평생의 역작을 두고두고 제 품에 두려는 욕심이 손 끝에 가득했다. 그리고 버논은 완성되었다.

 

어쩌면 너는 내 신에 대한 모독일거야.

 

그래서 지수는 버논에게만 자신의 세례명을 알려 주었다. 버논이 자신을 그 이름으로 부를 때마다 느껴지는 은근한 배덕감 같은 것을 속죄하기 위해 느끼는 죄책감이라 이름붙여가면서. 비록 기억을 추억으로 만들 줄 모르는 인형이었지만 지수는 버논에게 아낌없는 애정을 쏟아부었다. 처음으로 맛보는 온전한 내 것, 내 사람에 대한 소유욕이었다. 

 

버논의 뺨을 쓰다듬으면 기이할 정도로 부드러운 촉감과 함께 미미한 온기가 느껴진다. 자신이 고양이처럼 구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을 아는 버논은 익숙하게 그 손에 얼굴을 부빈다. 평범하기 그지 없는 시간이 지수에게는 무엇보다 더 반짝이는 기쁨이었다. 버논은 자신을 향한 지수의 애정을 이해할 수는 없지만 그 비슷한 것을 자신의 안에 만들어 낼 줄은 알았다. 유일무이하게 서로만 있는 시간과 세계 속을 유영하고 싶은 기분을 뭐라고 해야하는지, 버논은 지수의 책장 앞에서 그것에도 이름을 붙여보려 했다.

 

 

 

"조슈아, 피노키오가 뭔지 알아요?"

 

 

 

버논이 아닌 다른 인형의 몸을 깎던 지수에게 버논이 대뜸 그렇게 물었던 날이 있었다. 목각 인형이래요. 제페토라는 이름의 인형사가 만들었다는데, 얘는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길어진대요. 왜 거짓말을 해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지수는 버논이 깨어 있다고 해서 그를 늘 제 옆에 두려 하는 건 아니었다. 넓은 집 안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게 하고 그가 서재를 건드리는 것도 가만 두었다. 뭐든 의지를 가지고 행동한다는 것에 의미를 두었다. 그는 언제나 제 옆에 있을 것이고, 제가 사랑할 버논이라는 존재는 그렇게 성장할 테니까.

 

버논은 호기심이 많았지만 얌전한 편이었고 수습 가능한 사고만 쳤다. 그 사고 중 하나는 작업중이었던 저를 건드려 손 끝에서 피가 쏟아져 나오는 것이었고 그 이후로 되도록 작업중인 제게 말을 걸지 않았다. 버논이 궁금한 것은 제가 피노키오를 아는지 모르는지 여부가 아닐 것이다. 지수는 아예 칼에서 손을 놓고 버논에게로 몸을 돌렸다.

 

 

 

"조금 잔인한 동화지. 읽어 봤어."

 

"제페토는 피노키오를 학교에 보냈대요. 왜 그랬을까요?"

 

 

 

지수가 대답하기엔 어려운 질문이었지만 대답을 피하는 대신 잠시의 침묵으로 뒤로 물었다. 호기심이 많지만 급하지 않은 성격의 버논은 지수의 이런 침묵을 잘 기다려주었고, 지수는 때로는 사실을 말하기 위해 또 때로는 거짓을 말하기 위해 이런 시간을 잘 사용했다. 지금의 시간은 몇 번의 작은 질문들을 거쳐 버논이 해소하고 싶어하는 그 궁국적인 호기심이 무엇인지에 관해서였다. 평범하고 단면적으로 보이는 그 질문들이 실은 더 깊고 큰 문으로 들어가기 위한 중간 단계일 뿐이라는걸 지수는 3일만에 알았던 전적이 있었다.

 

 

 

"피노키오가 원했으니까. 제페토는 피노키오를 불쌍히 여기는 상태였고."

 

"겉옷까지 팔아서 보내줘야 할 만큼 그 불쌍한 마음이 컸을까요?"

 

"자기가 만든 피조물 중에 유일하게 움직이고 말하는, 살아있는 인형이었잖아. 소중했겠지."

 

 

 

지수는 버논의 머릿속을 대강 예상했다. 제페토와 피노키오를 제 머릿속에서 서로로 치환했을 것이다. 인형과 인형사라는 관계 앞에서 말썽만 부리지만 결국 마지막은 제페토를 구해내는 피노키오를. 결국에는 완전한 사람이 될 수 있었던 피노키오를. 자신도 사람이 될 수 있느냐고 물으면 어떻게 대답해 주어야 할지 고민하던 지수는 말을 돌려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이미 버논의 입술이 삐죽 튀어나온 뒤였다. 아마 제가 무슨 말을 걸어도 잘 듣지 못할 것이다. 너는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해줘야 하는지, 사람이 아니어도 괜찮다고 해줘야 하는지 고민했다.

 

 

 

"피노키오는 왜 학교에 가고 싶었을까요?"

 

 

 

그리고 불쑥 튀어나온 물음은 지수의 예상과는 달랐다. 하염없이 책 표지만을 바라보고 있던 한솔이 지수에게로 고개를 돌려 눈을 맞췄다. 이상하게도 반짝이는 눈이었다. 지수는 순간 제 속이 전부 꿰뚫린다고 느꼈다. 분명 단단한 유리알일 뿐인 그것이 말캉하게 녹아내려 저를 옥죄고 있다고.

 

 

 

"저는 지수의 옆에서 떨어지고 싶지 않은걸요. 피노키오도 사람이 된 이후에는 그랬을까요?"

 

 

 

버논은 이후 딱히 대답을 바랐던 것이 아니었다는 듯 그 책 하나를 가지고 자신의 방으로 갔다. 마음에 들어서인지 마음에 깊이 박힐 만큼의 질문을 품게 해서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지수는 자꾸만 충동적인 마음이 들었다. 제가 만든 가장 아름다운 피조물의 입술에 감히 제 입술을 겹쳐보고 싶다는.

 

버논은 다시 자리로 돌아와 푹신한 소파 위로 몸을 뉘였다. 시선은 지수에게 고정된 채였다. 이미 질문을 전부 덜어낸 말끔한 얼굴의 제 인형에게 지수는 상냥한 웃음을 띄며 다가갔다. 머리카락을 쓸어내리는 손이 커 금방이라도 부술 수 있을 것처럼 보였다. 버논은 영특하게도 피하는 대신 눈을 느릿하게 감았다 뜨며 그 손길을 즐겼다. 

 

 

 

"다음에 꼭 같이 별 보러 가자."

 

"약속했어요, 조슈아."

 

 

 

나를 원해준 너에게, 풀어 줄 수는 없으니 내 품에 있는 한 네가 원하는 건 최대한 들어줘야지.

 

어느새 살며시 눈을 감은 버논에게는 절대 들리지 않을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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