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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Vernon RPS COLLABORATION

[솔밍] 사랑蛇郞 上

극단 / 글

*수인물입니다.

 

 

누나는 뱀을 좋아했다.

다 쓰러져 망해가는 수목원에 희귀뱀이 있다며 나를 보디가드로 앞세워 질질 끌고 갈 정도로 좋아했다. 열일곱이 된 지 겨우 5개월이 지난 조무래기 같은 놈을 보디가드로. 그래서 나는 뱀이 싫었다. 아니다, 정정. 나는 누나가 싫었다. 뱀에 헤까닥 돌아버린 누나가. 누나는 머릿속에 빙빙 똬리 튼 뱀만 들어앉아서 또라이가 되어버렸다. 빙글빙글. 진짜 징글징글했다.

나를 데리고 간 수목원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보고 난 뒤 누나의 선호에 내가 느끼는 혐오는 그곳에 낀 두터운 안개만큼 더욱 짙어졌다. 날씨는 하필 더러운 빨래물처럼 흐렸다. 나무 몇 그루는 말라가서 한여름인데도 앙상했다. 이건 뭐 시발, 귀신의 집 입구냐고. 그러나 누나의 발걸음은 마냥 신이 나 있었다. 설마 이 미친새끼 진짜로 나를 믿는 건가? 우리 아빠는 어렸을 때 나를 어깨라고 불렀다. 김어깨. 이유는 어깨가 좁아서. 그리고 열일곱의 지금, 그때나 지금이나 솔직히 어깨너비는 별 다를 바 없다. XX. 키는 컸지만 이래봤자 죽마나 슬렌더 맨 둘 중 하나밖에 더 돼? 그런데 그런 놈보고 누나는 그랬다. 야, 너 오늘 내 보디가드 좀 해라. 배그한다고 헤드셋 안 빼고 어깨 두드리는 거 무시했다가 뒤통수 한 대 빡 맞고 난 뒤였다.

"싫다면?"

아빠한테 시계 들키고 처맞든가. 눈으로 할 수 있는 가장 험한 말을 퍼부어주며 뒤통수 문지르던 채로 물으니 누나는 시계를 운운했다. 개또라이 받고 거기에 쫌생스크루지밴댕이소갈딱지. 이름은 김민주. 학력은 대학교 자퇴, 고졸로, 직업은 우리 부모님 딸. 결국 백수였다. 나는 이 혈육을 미주라고 불렀다. 미친 주둥아리. 물론 입 밖으로 낸 건 아니고, 그냥 나 혼자. 속으로만. 어쨌거나 이 김미주는 세상에서 제일 치졸한 방법으로 하나밖에 없는 동생을 협박해 어거지로 끌고 나왔다. 그래서 온 게 이딴 곳이다.

나보다 두어 걸음 앞선 누나의 발목과 나의 발목에는 보이지 않는 쇠고랑이 채워져 쇠사슬을 늘어뜨리고 있었다. 나는 옴짝달싹할 수 없는 죄수와 같은 모양새로 더디게 누나에게 딸려 갔다. 뱀은 무슨, 귀신부터 만나는 거 아니야? 변성기가 늦게 온 탓에 조금 갈라지는 목소리가 한적함을 넘어서 적막한 수목원에 울려 퍼졌으나 김미주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

뱀이 있다는 우리까지는 정문에서부터 거리가 좀 있었다. 15분 정도는 쉬지 않고 걸은 것 같은데 아직도 우리는 보이지 않았고 나는 언덕을 걷고 있던 참이라 점점 짜증이 났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우리가 마주한 사람이라고는 머리가 다 벗겨진 등산복 차림의 노인 남성 하나와 여러 겹의 렌즈가 팔뚝만 한 길이로 달린 카메라를 목에 맨 채 서성이는 웬 괴짜 같은 사람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에 뱀의 존재에 대한 나의 의심은 한 겹 더 쌓였다.

"이미 죽어서 폐사한 거 아냐? 누나 말대로 희귀뱀이고 그러면 사람도 많겠지. 왜 이런 곳에 있어."

꽤 합리적 의심이라 생각되는 말을 누나에게 건넸으나 미친놈에게 씨알이 먹힐 거라 기대하는 건 바보나 하는 짓이다. 그리고 나는 바보가 아니다. 킹리적 의심이건 뭐건 뱀밖에 모르는 김미주의 얼굴에는 굳건함마저 어려 있어서 이쯤 되니 좀 무서워졌다. 그 얼굴로 누나는 어조 변화도 없는 말을 뱉었다.

"있어. 분명히 있어."

"아니이―"

"나는 알아."

신념에 눈꺼풀을 내준 이의 귓구멍을 뚫을 수 있는 첨언은 없다. 나는 입을 다물었고, 다시 침묵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뱀우리는 그로부터 5 분 정도를 더 걷고 나서야 형체를 서서히 드러냈다. 자욱한 안개구름 사이로 어른의 무릎 정도 높이로 싸인 야트막한 돌담이 3미터쯤의 거리를 남겨두고 먼저 눈에 들어왔다. 우리 주위에 둘러 쌓아둔 것이 분명했다. 몇 발자국 가까이 다가서자 나의 시야에 들어찬 것은 뱀이 아니었다. 나는 돌담 틈새에 빼곡히 끼어있는 검록색의 이끼와 통유리창 겉면을 마구잡이로 뒤덮은 담쟁이덩굴들에서 도 넘은 무성의함을 보았다. 그리고 진흙먼지 섞인 물때로 얼룩진 유리창 속에 아무렇게나 배치되어 있는 썩어빠진 나무 조각들은 그곳에 일종의 '관리'라 명할 수 있는 행위가 거의 아무것도 행해져 오지 않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다. 가끔 관리인이 와서 먹이만 넣어주고 가는 것인지 우리의 문에 채워진 걸쇠만 페인트가 벗겨져 반질거렸다. 그 믿기 어려운 행태에 나는 뱀의 존재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흉물에 가까운 끔찍한 구조물을 살피느라 넋을 놓고 있었다. 그러나 누나는 이 와중에도 더러운 유리창 너머의 뱀을 찾은 것인지 흥분에 찬 손길이 내 어깨를 다급하게 두드려왔다.

"민규야. 민규야. 저것 봐."

"어디."

"저기, 저기야. 보여? 저 Y자 모양 나무 사이에, 하얗게 늘어져 있는, 뱀 말이야."

길게 뻗은 손끝에는 정말로 뱀이 보였다. 그러나 나는 내게 빈틈없이 바짝 붙어 귓구멍을 불쾌하게 간지럽히는 열기어린 콧김 때문에 왼쪽으로 한 발 옮겨 서 누나와 간격을 벌리는 것이 우선이었다. 누나는 잔뜩 들떠 있었으나 뱀을 놀라게 하지 않기 위해 목소리를 낮추는 것을 잊지 않고 있었고, 그 덕에 누나의 속삭임은 완전히 광인狂人의 그것처럼 들렸다. 메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와의 계약이 성사되었을 때 아마도 이러한 숨소리를 흘렸으리라. 어쨌거나 집착으로부터 한 발자국 정도의 여유를 가지게 된 나는 다시 누나가 가리켰던 뱀을 바라보았다. 그냥 뱀이었다. 별다를 것 없는. 다리가 없고, 길고, 비늘이 미끈거리는, 뱀. 자연히 무신경한 말이 튀어나왔다.

"그래. 뱀이네."

나에게는 그것이 뱀이든, 누가 신고 버린 스타킹이든, 찢어진 그물 조각이든, 혹은 모형이든 아무 상관이 없었다. 당연하잖아. 아까 못 따낸 치킨이 아직도 눈에 신기루처럼 어른거렸다. 간만에 존나 잘 풀리고 있었는데. 일말의 알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는 나의 말을 읽어낸 것인지 누나는 적나라하게 기분 나쁜 티를 내며 나의 팔뚝을 야무지게 꼬집었다. 아! 씨발 진짜 돌았어??? 눈물이 찔끔 날 만큼 아파서 조건반사적으로 소리를 빽 질렀는데 김미주 얼굴을 보니 입이 절로 다물어졌다. 미친 인간은 눈빛부터 티가 난다더니, 그게 우리 누나였다. 야차 같은 얼굴에 안광이 형형한 채 누나는 짓씹듯이 나한테 욕을 뱉어댔다.

"멍청한 새끼. 정말 안목이라고는 개미 똥만큼도 없는 놈 같으니."

"어쩌란 거야, 나보고. 나는 관심이 없는데."

"저 뱀 이름이 블랙맘바야. 뭐 느껴지는 게 없어?"

누나가 나에게 느껴지는 것이 없냐고 묻자, 나는 나의 마음 한 구석에 어설프게 묻어두었던 느낌이 분명하게 재생再生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것은 구역감이었다. 수목원을 뒤덮고 있는 안개처럼 두루뭉술하게 존재하였던 막연한 혐오의 감感이 그의 물음으로 인해 뚜렷한 형체를 갖추어 둥글고 단단하게 내 속에서 응어리지었다. 나는 누나의 물음이 단순한 감상을 묻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누나는 나에게 자신이 느끼는 뱀에 대한 사랑과 경이를 전염시키고 싶은 것이었고, 이건 몇 년에 걸쳐 이어지고 있는 행위였다. 빌어먹을 뱀. 누나의 부자연스러운 강요에 내가 느끼는 반발감은 주먹만 한 크기로 나의 갈비뼈 정중앙 즈음에 자리를 잡았다가 어느새 나의 물컹한 폐부를 으깨어버릴 기세로 커져 가슴이 뻑적지근하게 아팠다. 속을 가득 채우는 메스꺼움은 내가 한 글자를 내뱉기에도 힘들게 만들었고, 나는 마른침을 두어 번 삼키고 나서야 겨우 한 마디를 구토할 수 있었다.

“… 없어.”

“병신새끼.”

누나는 영변의 약산 진달래꽃 즈려밟듯 욕을 했다. 진심이 담긴 욕설이 쓰잘 데 없이 찰졌다. 내가 좀 전에 벌려놓았던 틈은 누나가 내게 자신의 감상을 강요하느라 다가선 발걸음에 의해 없어져 있었다. 나는 나를 깔보는 악담보다 지금 내 팔뚝에 맞닿아오는 타인의 살결이 더 불쾌하였으므로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다시 한 걸음 떨어져 간극을 벌렸다. 누나보다 괜히 닿았다가 옮을 광기가 더 무서웠다. 어디 가서 뱀 귀신이라도 붙여 왔는지 뱀 앞에서 눈깔을 까뒤집는 누나는 주머니에 넣어두었던 작은 수첩과 벌써 반 토막으로 짧아진 4B 연필을 허겁지겁 꺼내 들었다.

"그럼 방해나 하지 말고 비켜. 멍청이처럼 거기 서서 시야 가리지 말고."

전국 어딘가에 있다는 뱀을 찾아간 뒤 그들을 그려 기록하는 것은 누나가 약 3년 전부터 새로 시작한 일이었다. 누나는 뱀 우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저렇게 한 번 발동이 걸리면 최소 두 시간은 꼼짝도 않고 뱀을 그렸다. 결국 그 시간동안 얼뜨기로 남는 건 나밖에 없었다. 어깨가 좁아서 누나한테 끽 소리도 못하고 좆도 모르는 뱀 앞에서 폰이나 만지작거리는 얼뜨기.

폰게임도 30판 쯤 하니 질렸다. 결국 하릴없이 뱀우리 주변만 빙빙 서낭당 치성 드리듯 돌았다. 마실 삼아 다른 곳에 다녀오려고 해도 워낙 을씨년스러운 곳이라 이 주변을 벗어나고 싶지도 않았다. 쪽팔리지만 쫄린 거 맞다. 죽는 것보단 낫잖아. Kill her, Mommy! Kill her! 언젠가 누군가에게 이끌려 강제로 시청했던 공포영화의 한 마디가 머리를 스쳐 갔다. 역시, 여기서 존버하자!

다섯 번쯤 나 홀로 강강술래를 했다. 와중에도 누나 시야를 가렸다간 또 어떤 지랄이 떨어질 지 몰라서 누나가 앉아있는 벤치 앞에서 뒤로 돌아 뱀우리를 따라 걷다가 또 누나가 보이면 턴. 불안한 똥개. 딱 그 꼬라지로 빨빨거렸다.

- 야.

"왜."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대답했다. 보나 마나 김미주가 잔심부름이나 시키려고 부르지 않았겠냐고, 누나 있는 곳으로 발을 질질 끌었다.

"왜, 또."

"……."

벤치 근처에 와서 본 누나는 수첩에 빨려 들어갈 듯 상의를 잔뜩 웅크린 채 펜을 움직이고 있었다. 나뭇잎 서걱이는 소리 하나 없는 곳에서 석석석석하고 종이 긁는 소리만 요란했다. 주온에 딱 이런 귀신이 하나쯤 나왔던 것 같은데. 그나저나 난 뭔 공포 영화를 이렇게 많이 봤냐. 무서운 건 질겁하는 주제에 호기심은 뭐 같이 많아서 그렇다. 고양이도 죽이고 김민규도 죽이는 호기심. 아무튼 귀신 들린 모양새를 눈앞에서 보고 있자니 직접 건드리긴 좀 무서워서 벤치 끝을 툭툭 쳐서 불렀다. 기대도 안 했지만 답이 없었다. 결국 의자 등받이를 조금 세게 쳤다. 야, 왜 불렀냐고. 들린 얼굴이 딱 봐도 죽고 싶냐는 인상이다.

"뭐야, 시발."

"왜 불렀냐고."

"눈만 맛간 줄 알았는데 귀도 먹었니?"

"뭔 소리야. 야, 그랬잖아."

"안 그랬어. 다른 사람이 누구 불렀나 보지."

"여기 누가 봐도 누나랑 나 밖에 없거든?"

"그럼 네 귀가 썩었거나."

아오 썅. 의자 다리를 세게 걷어차려다 발만 한 번 구르고 돌아섰다. 되로 줬다가 말로 받기. 욕 한 번 하고 백 대 처맞기. 엮여봤자 나만 손해였다. 척 봐도 마이너스 3천쯤 떨어지는 계산. 그래. 똥이 무서워서 피해? 누굴 닮아서 성격이 저 지랄인지 몰라. 험한 말은 입안에서만 메아리쳤다. 직직 끌리는 운동화 소리만 레지스탕스다.

- 너 나 들리지.

찍찍. 지익직. 운동화 밑창이 다 닳아 없어질 기세로 짜증을 내며 뱀우리를 또 돌아 누나가 있는 벤치의 정반대편 지점에 도달했을 때, 아까보다 또렷한 목소리가 귓속을 타고 들어와 척추선을 서늘하게 훑어내렸다. 팔꿈치부터 손목까지 오소소 소름이 돋아올랐다.

누나가 아니다.

섬광처럼 뇌리에 번뜩인 생각이었다. 남자다. 낮고, 나지막하게 부드러워서 되레 섬뜩한, 남성의 목소리. 나는 곧바로 뒤를 돌아봤다.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지만 무조건적 반사였다.

- 거기 말고, 이쪽.

세 번째로 소리가 들려왔을 때, 고개가 퍼뜩 돌아갔다. 오감은 이성이 게을러질 때 오히려 정확해진다. 본능적으로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돌아간 고개는 명확했다. 뱀우리. 뱀우리다. 목소리는 뱀우리 안에서 말을 걸고 있었다. 그리고 잔뜩 확장된 동공에 들어찬 것은 분명하고 또렷하게 쳐들린 뱀 대가리였다.

뱀이 나를 보고 있었다. 비늘이 덮인 작고 하얀 역삼각형 대가리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뱀이 무언가를 볼 때 어떤 자세를 취하는지, 어떤 표정인지, 어떤 눈빛인지 좆도 몰랐지만 지금 저 뱀이 나를 보고 있다는 건 총 맞은 대가리로도 알 수 있었다. 그러니까, 방금 들린 목소리는, 저 뱀이…

- 그렇게 무서워할 필요는 없는데.

 잘 익은 복숭아처럼 연분홍빛 혀가 좁은 아가리구멍으로 느릿하게 나왔다 말려 들어간다. 뱀우리를 너무 돌았나. 하늘이 빙빙 돈다. 강강술래. 강강수월래. 하얀 비늘이 시야를 번쩍번쩍 가렸다. 머리가 어지러워서 귀를 퍽퍽 쳤다. 귀가 맛갔나 봐. 진짜로. 그래, 김미주가 말은 좆같이 해도, 성격도 지랄맞아도, 뱀에 미친 것 빼곤 정상이잖아. 내 귀가 정말 썩어버렸나 봐. 이럴 줄 알았으면 교회 좀 나갈걸.

급한대로 손부터 곱게 모아 쥐었다. 아무래도 아까 김민주랑 닿았을 때 옮아버린 게 틀림 없다. 귀신이든 광기든. 그 새끼를 괴롭히던 무언가가 기어코 나한테 옮겨붙은 거다. 어쩐지 여기 터가 안 좋아 보인다 했어. 입구부터 서늘한 게 시발 좆될 줄 알았다고. 아는 기도문 따위가 없어서 염불만 외웠다. 할 줄 아는 말이 그것밖에 없는 놈처럼 중얼거렸다.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관세음보살. 나무아미타불.

- 아프겠다.

좆됐다. 뱀 귀신은 염불로 퇴치가 안 되나 봐.

- 그러지 말고, 내 말 좀 들어봐 주면 안 될까. 나 정말 이상한 사람 아닌데.

"… 아미타불, 관세음보살, 나무아미…… 뭐?"

- 나 정말 이상한 사람 아니야.

사람? 처형식 전 마지막 기도를 올리는 사람처럼 내내 숙이고 있던 고개가 퍼뜩 들렸다. 목에 피켓 걸고 예수천국 불신지옥 외치던 예수쟁이 분들, 이상하게 생각해서 죄송합니다. 여러분도 다들 무서우셔서 그러셨던 거군요. 살다살다 김민주가 보고 싶을 줄이야. 등이 얼마나 젖은 건지 꼬리뼈까지 서늘했다. 당장이라도 주저앉아 버릴 것 같았지만 마지막 남은 생존 본능을 끌어모아 각을 쟀다. 토낄 각. 하나아, 두울, 세엣하면―

- 네 앞에 자물쇠 보이지.

"어?"

- 자물쇠. 녹 잔뜩 슨, 그거 말이야.

"어, 어어…"

자물쇠 소리에 속수무책으로 질질 풀려가던 현실감각이 도로로록 감겼다. 존나 웃기지만 자물쇠라는 단어 하나에 갑자기 이 모든 상황이 다소 납득가기 시작했다. 하얀 거죽에 새빨간 눈을 뜨고 분홍빛 혀를 날름거리는 뱀 입에서 튀어나오기엔 너무 실용적인 단어였다. 뾰족하고 날렵한 꼬리가 뱀우리의 문을 걸어 잠그고 있는 자물쇠를 가리키고 있었다. 식은땀에 절은 머리를 대충 끄덕거렸다.

- 그거, 엄청 낡았거든. 이음새도 존나 헐거워서 돌로 내려치면 열려.

"그런… 데?"

- 좀 열어주라.

존나라 그랬다. 존나. 뱀이, '존나' 헐겁다고 했다. 자물쇠가. 머리에 잔뜩 쏠렸던 피가 천천히 온몸을 돌기 시작하는지 뒤늦게 뒤통수가 근질거렸다. 우선 심호흡부터 했다. 쓰읍 하. 쓰으으으읍 하아아아. 조금이나마 진정이 되니 뱀이 했던 말 하나하나가 되감기되어 영화 크레딧처럼 천천히 올라왔다.

"ㅈ… 잠만. 잠시만. 나 지금 뭐가 뭔지 하나도 이해가 안 되거든. 일단, 너 뱀이야?"

- 응.

"근데 왜 사람이라고 해?"

- 사람이니까.

"뭔 소리야. 뱀이라며."

- 지금은 이런데, 사람 맞아.

"하… 그래, 그렇다 치자. 세상에 어디 이해 못할 일이 한두 개니. 외계인은 고사하고 열 길 바닷속도 제대로 모르는데 뱀이 사람이고 사람이 뱀인 일 정도야 어디 없겠냐고."

- …….

"……."

- … 내가 여기 갇힌 지는 1년 쯤 됐어. 한국에 온 지 얼마 안 된 때라, 내가 잘 몰라가지고… 아무튼, 그래서 나갈 방법을 최대한 찾았는데, 아무리 해도 이 안에서는 뭐가 안 돼서. 게다가 뭣보다, 저것 때문에.

뱀이 모로 살짝 든 고개의 끝에는 CCTV가 있었다.

- 함부로 인화人化할 수도 없었어.

"뭐야. 그럼 내가 부숴도 걸리잖아."

- 고장 났어.

두 달 전에 올빼미 한 마리가 전력으로 날아와서 머릴 박고 죽었거든. CCTV를 바라보며 중얼거린 뱀의 눈이 묘하게 흐릿해지며 가늘어졌다. 회상이라도 하는지.

"… 아무튼, 그래서, 네 말은 여기서 널 꺼내달라는 소리야?"

- 응. 여기 갇혀서 수백 번, 아니 어쩌면 수천 번? 불렀어. 근데 내 목소리를 들은 게 너 뿐이야.

"근데… 그래서 내가 얻는 게 뭔데?"

지금 생각해도 이 말은 꽤 당돌했다고 생각한다. 난생처음 보는 뱀이랑 말 섞으면서 김민규가 꺼낼 말은 아니었다는 거다. 뱀도 조금 당황했는지 눈이 벙쪄 보였다. (물론 이건 기분탓일 확률이 크다. 난 뱀 표정을 읽을 줄 모르니까.)

"아니, 사실이 그렇잖아. 일단 CCTV가 고장이 났으니까 문은 연다 쳐. 근데… 너, 독사잖아? 그것도 존나 쎈. 내가 뱀 좆도 몰라도, 삼 년 서당개 노릇은 졸라 착실히 해서 그 정도는 알거든? 그래서 너가 누구 하나라도 물어 봐. 그래서 죽어. 그럼 난 어쩌냐고."

- 아…

"CCTV 고장 난 건 아무것도 아니다, 너. 대한민국 경찰이 얼마나 선택적으로 빠릿빠릿한 지 모르지. 나 정도 쪼렙 새끼는 금방 잡힐걸?"

거기까지 말하고 나니 방금 전까지 발발 떨던 새끼 고라니가 우스울 정도로 뿌듯했다. 이름 모를 희열마저 느꼈다. 네가 뱀인간이건 인간뱀이건 혹은 외계인이건 상관 없다 이 말이야. 되레 내 쪽에서 뱀 눈을 똑바로 마주 봤다. 뭐, 네 눈이 빨가면, 뭐 어쩔 건데. 

- … 그건, 전혀 걱정 안 해도 될 텐데.

그걸 너가 어떻게 장담해.

- 난 사람을 안 해치니까.

이건 또 뭔 뱀이 씨나락 까 먹는 소리야.

- 정말이야. 난 아무것도 안 해쳐. 보면 알 텐데.

뱀 꼬리가 다시 한번 유려하게 움직였다. 가리킨 구석에는, 자그마한 생쥐 한 마리가 더 작은 발로 우리 아래 깔린 모래를 파고 있었다.

- 얼마 전에 온 관리원이 넣어 준 거야. 내 밥이라는 뜻이지. 그치만 난 안 먹었어.

"그럼 너 굶었어???"

- 먹긴 먹었지. 죽은 쥐만.

"……."

- 그런 눈으로 보지 말아 줄래? 나라고 먹고 싶었던 건 아니야. 일단 살긴 살아야지.

아, 그래. 그렇긴 하네. 난 진짜 어쩔 수 없나 보다. 또 납득하고 있네.

- 아무튼, 네가 뭘 얻느냐고 했지?

"어어, 어. 그랬지?"

- 소원 하나 들어줄게. 뭐든.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에 누구 하나가 스쳐 지나갔다. 김민주. 망할 인간. 이 뱀이 이 우리에서 나오는 순간, 김민주가 그릴 수 있는 뱀은 온데간데없어진다. 뱀에 헤까닥 돌아버린 미친놈한테 이보다 더 좋은 복수가 있을 수 있나? 손끝이 찌릿했다. 한창 잘 떠들던 놈이 갑자기 말없이 서 있으니 불안했던 건지 뱀이 물어왔다.

- 너 이름 뭐야?

"… 김민규."

김민규… 뱀은 제 머릿속에 내 이름을 새기기라도 하듯 조용히 한 번 읊조렸다. 그리곤 물었다. 너 지금 폰 있어? 어엉, 있는데.

- 받아 적어. 서울시…

"잠만, 잠만!"

- … 서울시 강남구―

뱀은 주소 하나를 불러 줬다. 강남까지만 들어도 돈 많은 냄새가 풀풀 났다.

- 내 집이야.

"허."

- 만약 내가 약속을 안 지키면, 와도 좋아. 나가면 번호도 알려 줄게.

"……."

- 진짜야. 제발, 부탁할게.

나 좀 도와주면 안 될까.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어도, 나는 이 녀석이 이렇게 말하는 순간 곧바로 근처의 돌멩이를 집어 들었을 것이다. 나는 그런 놈이다. 어쩔 수 없이.

"하… 너, 약속한 거다?"

- 응. 약속할게. 꼭.

"… 알았어."

주변을 둘러보니 대충 손에 쥐기 편한 크기의 돌 하나가 있긴 했다. 집어 들어 쥐어 보니 생각보다 더… 주먹도끼 같이 손에 꼭 맞았다. 캐치볼 용 야구공을 손에 익혀 보듯 두어 번 허공에 던지고 잡아보다가 꽉 잡아 쥐곤 자물쇠 가까이 다가갔다. 친다? 핏빛 눈동자와 눈을 한 번 맞췄다가 손을 높게 쳐들었다. 그리고,

퍽.

한 번 더,

퍽.

자물쇠 몸통이 힘 없이 고리를 놓곤 툭, 늘어졌다. 진짜… 개헐겁네. 관리자 미쳤나.

- 열쇠를 놓고 왔는지 하루는 그렇게 열더라고.

"참 나… 진짜 다들 나사가 빠져 가지고."

자물쇠를 빼내고 문손잡이에 묶여 있던 쇠사슬도 줄줄 풀어냈다. 으, 녹 냄새. 이어 꽉 맞물려 제대로 열리지도 않는 문을 억지로 열자, 나뭇가지 주위를 칭칭 둘러 감고 있던 하얀 비늘들이 스르르륵 풀어지더니 유연하게 나무 몸통을 타고 내려왔다. 뱀, 이다. 진짜 뱀. 그것도 엄청난 독사. 나무에서 내려 온 뱀이 모랫바닥을 S자로 가로질러 내게 다가오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제야 단 한 번도 하지 않았던 가정이 척추선을 훑고 지나갔다.

이게 전부 내 망상에서 비롯된 거였다면?

이 대화는 죄다 환청이었고, 내가 진짜 미쳐서 괜한 짓거리를 한 거였다면?

지금 기어 나오는 이 뱀은, 그저 뱀일 뿐이고, 내가 문을 여는 거에 자극받아서 지금 나를 공격하러 오는 거라면……?

거기까지 생각이 도달했을 때, 나는 내 발 바로 앞까지 당도한 하얀 대가리를 보았다. 반사적으로 몸이 움칠, 떨리며 오른발이 한 발자국 뒷걸음을 쳤다. 그 모습을 본 뱀은 잠시 멈췄고,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 고마워.

"……."

- 네가 베풀어 준 은덕은, 잊지 못 할 거야. 정말로.

느릿하게 눈을 내려 감았던 뱀은 고개를 가볍게 숙였다가 들었다. 그 모양이 사람과 똑닮아 있었다. 그리고 내 오른발 쪽으로 몸통을 쭈욱 늘려 뻗더니 신발코에 가볍게 코끝을 댔다. 꼭, 입이라도 맞추는 것처럼. 나는 여전히 한 치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

뱀은 갈 채비를 하는지 우리 안에서 기다란 몸을 서서히 다 빼냈다. 숲속으로 방향을 잡고 움직여갔다. 새하얀 비늘로 뒤덮인 뱃거죽이 흙바닥을 소리 없이 긁으며 가로질렀다. 갈빛으로 시든 풀잎 새로 하얀 고개가 들어가기 직전이었다. 뱀이 뒤를 돌아 보았다.

참, 내 번호는 … 이야. 들었지? 연락해, 꼭. 뱀은 그 말을 끝으로 정말 수풀 속으로 몸을 온전히 감추었다. 당연하지만 내가 그 번호를 외울 수 있었을 리는 없었고, 뱀이 사라진 뱀우리 안에선 휘휘하고 스산한 바람만 울었다.

 

눈 깜박임 한 번에 일주일이 갔고, 손가락 튕김 한 번에 열흘이 갔다. 고1의 신학기란 그런 것이었다. 정신 차려 보니 7월, 나뭇잎이 쨍했다.

뱀은 연락이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강남에 갔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었다. 번호는 몰라도 주소는 폰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요즘에도 눈을 감으면 문득 그 목소리가 들리곤 했다. 나 좀 도와주면 안 될까. 낮고, 부드럽고, 섬뜩하게 다정하지만, 처연한 목소리. 뱀은 사라졌지만, 그 음정은 오래도록 남아 이따금 퉁, 갈비뼈를 울렸다. 높낮이 변화가 극적이진 않지만 묵직한 목소리는 오늘처럼 흐린 날, 채도 낮은 구름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을 때 귓바퀴를 간지럽히곤 했다.

"그러고 보니 오늘 전학생 온다며."

"얼굴 봤어? 혼혈 같던데."

"존나 잘생겼더라. 근데…"

머리가 새하얗던데. 거의 은발처럼. 등 뒤의 대화가 들렸고, 나는 새하얗다는 말에 어깨를 살짝 떨었다. 그 날의 서늘한 공기가 목덜미를 훑는 듯했다.

"야, 머리가 하얀 게 문제냐? 너네 걔 눈 못 봤지?"

"왜? 눈이 어떤데."

"눈이―"

드르륵, 교실 앞문 열리는 소리가 세찼다. 나도 모르게 대화에 집중하고 있던 몸이 자연스레 문으로 쏠렸다. 평소보다 조금 상기된 얼굴의 담임이 들어왔다.

"전학생, 들어오자."

그 말에 문 바깥에 서 있었던 인영 하나가 조심스럽게 교실 안으로 몸을 들였다. 머리가 새하얬다. 들었던 대로. 교실에는 순식간에 안개 같은 정적이 까라졌다. 담임 바로 옆까지 다가섰던 아이가 몸을 돌려 우리를 바라보았을 때, 반 곳곳에선 헉, 하고 숨 삼키는 소리가 터졌다. 교실을 바라보고 선 그 아이의 눈은,

새빨갰다. 피처럼.

"그럼… 자기소개 간단하게 할까?"

아이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나는 그 아이가 교실 안으로 몸을 들여놨을 때부터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앉아있기만 하는데 호흡이 가빴다.

"안녕하세요."

"……."

"최한솔이라고 합니다."

새빨간 눈동자가 교실 안을 넓게 둘러보다가 한 곳에서 멈췄다. 그리고, 온다.

내 귀를 떠나지 못하고 메아리치던 목소리가 내게 다가오고 있었다.

"오랜만이다, 민규야."

뱀이다.

쿵, 쿵. 심장이 고막을 찢을 기세로 뛰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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