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icon 2.png

1st Vernon RPS COLLABORATION

[솔부] 파이프 드림

티토 / 글

이름 모를 나무들이 하늘로 높게 솟아 가려진 나무 틈 사이로 구름 한 점 없이 허공을 노래하는 하늘을 바라보다 앞을 보면 초록으로 뒤덮인 이 숲에서 유일한 오차인 마냥 보이지도 않는 햇빛에 반사돼 빛나는 하얀 조약돌들이 보인다. 그 모습이 한껏 어색하기도 하면서 오차인 주제에 원래 안식처인 마냥 일정하게 놓아진 모습이 웃겨 그 돌을 따라가면 너가 보인다. 시간을 연주하는 너가.

 

 엄마는 할머니를 태어나서 딱 두번 봤다고 했다. 첫번째는 마을 사람들과 할머니에게 찾아가 인사를 드렸을 때였고 두번째는 할머니가 죽기 전 이 숲과 지금 내 손에 들려있는 이 악기를 주셨을 때. 푸르다 못해 울창한 숲이 어느 지점에서 끊기게 되면 그곳의 하얀 기둥들로 감싸진 태양이 비추는 곳에서 내가 시간을 연주하고 있다. 날 사랑한 엄마가 나에게 주고 간 숙제. 시간을 연주하는 것. 말 그대로 나는 이 숲에서 시간을 연주해야 했다. 엄마가 주고 간 이름 모를 악기의 줄을 당기며 시간이 흐르도록 했다. 나는 죽을 때까지 이 숲에서 시간을 연주해야 했고 그 뒤로는 내가 가장 사랑한 사람이 시간을 연주해야 했다. 시간의 연주자들의 시간은 악기의 영향으로 보통 사람들과 조금 다르게 흘러간다. 하지만 사랑한 사람이 생기는 그 순간부터 나는 내가 느리게 보내 온 시간들에게 보상하는 듯 빠른 시간을 살게 된다. 엄마는 아빠를 사랑한다는 사실을 자각하는 것이 많이 느렸다고 했다. 그리고 정신 차려 보니 시간을 연주하는게 싫어 도망간 아빠 대신 남겨져 있던 나를 더 사랑했다고 했다. 나를 사랑해서 나에게 숙제를 남겨주는 게 싫어 엄마는 내가 태어나자마자 나를 마을로 보내버렸다. 하지만 내가 9살이 되던 무렵 엄마는 나 다음으로 다른 사람을 사랑하지 못한채 돌아가셨고 엄마는 죽기 전 날 품에 안은 채 마지막으로 말했다. 아빠보다 너를 더 사랑해서 미안하다고. 그리고 말했다.

 "우린 누구도 사랑해서는 안돼."

 아무도 사랑하지 말라고.

 

 

 

 조금은 헝클어진 갈색 머리를 하고 숲에서 걸어오는 너가 보였지만 연주를 멈출 수 없었다. 내가 연주하지 않는 순간부터 세상은 나를 제외하고 다 멈춰버리니까. 그래서 나는 널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이 숲의 이방인인 너를.

 "안녕!"

 말한지가 오래되어 어떻게 말하는지 잊은지 오래였다. 마지막으로 말했던 게 언제였는지 기억에 나지 않아 손가락으로 줄을 튕기며 연주를 이어갔다. 시간이 멈추면 안되니까.

 "너 되게 연주 잘한다. 이름이 뭐야?"

 "…"

 "혹시 바쁜데 내가 방해하는 거야?"

 "…"

 "그럼 나 조금만 들어도 돼?"

 내가 할 수 있는 건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인 뒤 다시 연주하는 것 밖에 없었다. 그렇게 잔디 하나 없는 바닥에 털썩 앉은 채 너는 내 연주를 한참이나 들었다. 이 숲의 이방인. 이 숲의 유일한 오차인 주제에 원래 안식처이 마냥 있는 너의 시선의 끝에 있는 나는 너와 눈을 마주치기가 어려웠다.

 "나 이제 가봐야 돼."

 웃는 법도 오래 되어 어떻게 웃는지 까먹었는데 기억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나는 손가락으로 줄을 튕기며 웃는 방법을 찾고 있었다.

 "이름이 뭐야?"

 "..."

 "나는 부승관."

 "…"

 "혹시 말 못해?"

 고개를 저었다. 나는 말을 할 수 있었다. 이 기억만은 분명했다. 언제 떠난갔는지 모를 엄마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주지 못한 걸 후회하고 있었으니까. 꼭 다시 만나면 웃으면서 날 사랑해줘서 고맙다고 말해주려고 했었으니까.

 "그럼 말할 줄 몰라?"

 잠시 눈으로 허공을 보라보다 고개를 위아래로 끄덕였다.

 "그럼 입을 아- 하고 벌려봐."

 내가 입을 벌리기 무섭게 너가 내 배를 때렸다. 아팠다. 놀라서 악기를 떨어뜨리자 어색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아."

 "이렇게 말하는 거야."

나는 그날따라 잊어버린 웃는 방법을 너무 찾고 싶었다.

 

 그 뒤로 너는 몇 번이고 다시 날 만나러 왔다. 너는 오면 올수록 이 숲의 이방인이 아닌 숲의 한 부분으로 채워져 갔고 나는 그런 너를 기다리는 일상에 적응할 수 밖에 없었다.

 "안녕!"

 "안녕."

 "이제는 인사도 잘 받아주네!"

 "…"

 그리고는 계속된 침묵과 내 연주는 우리의 일상이 돼 갔고 어느 순간부터는 이게 너무 자연스러워 너가 없어서는 안될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있지."

 "…"

 "혹시 나 불편해?"

 "아니."

 "근데 왜 말을 잘 안해?'

 "…"

 "혹시 뭐 말할지 모르겠어?"

 어느 물음에서 대답을 해야 하는지 하지 않아야 하는지 그런건 몰랐다. 몰라도 된다고 생각했다.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너는 일어나 웃으며, 사실 너가 안 웃었던 적을 찾는 게 더 힘들겠지만 그 웃음이 유독 예뻐서 너가 웃었다는 걸 기억하고 싶었다. 그래서 잠시 연주를 멈췄는데

 "네 머릿속에 있는 걸 그냥 말하면 돼! 그냥 지금 생각나는 거!"

 생각나는 거. 수도 없이 많았다. 왜 내가 연주하고 있지 않은 지금 너의 시간은 흐르고 있는지, 너는 어디에 살고 있는지, 혹시 집이 멀어 돌아가는 길이 심심하지는 않은지, 내가 재미 없는데도 왜 맨날 찾아오는지. 그런데도 난 그 많은 생각들 중에 햇살 위로 보이는 아마 내가 지금까지 봐온 햇살 중에서도 가장 눈부신 햇살보다 눈부신 너를 보며 이렇게 말할 수 밖에 없었다.

 "예쁘다."

 

 사랑하면 안된다고 말했으면서 엄마는 왜 마을에서 여기로 오는 길의 그 나무들을 베고 길잡이인마냥 하얀 조약돌들을 거기에 놓았는지. 그리고 너는 왜 그 뻔히 보이는 수상함과 계산되지 않은 길로 와 나를 만나 나를

 

 사랑에 빠지게 했는지.

 

 

 

 "나는 커서 꼭 이사갈 거야."

 "..."

 "우리 집이 폭죽을 파는데 잘 안 팔리거든. 항구 근처라 잘 쏘지도 못하고."

 "..."

 "나도 세번밖에 못 봤어. 그래서 항구 멀리 가서 맨날 폭죽을 터뜨릴거야."

 "..."

 "그때 내가 너도 데려갈게!"

 "나?"

 "응, 내가 너한테도 불꽃놀이 보여줄게."

 너의 애기를 들으면 내가 너의 세계에 있는 느낌이 들었다. 푸르지 않은 것을 찾는 게 힘든 끝을 알 수 없는 숲과 숲에서 유일하게 하늘이 트여 해가 보이지 않는데도 햇살이 강한 나의 집이라고 칭하기 어려운 이 곳이 너와 있으면 조용하고 무디게 노래하던 새들의 노래는 배를 타고 들어오는 선원들의 목소리로, 이름 모를 꽃들 사이에서 유일하게 내가 이름을 아는 눈에 띄게 붉은 장미는 항구 근처에 자리 잡아 아이가 조심조심 뿌리를 옮겨 꽃집의 자리잡은 민들레로, 내가 유일하게 연주할 수 있는 이 곡은 거리의 할아버지의 멜로디언 소리와 지나가던 악사들이 만들어낸 합주곡으로 들려 나도 마치 그곳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 속에서는 너와 같이 몰래 폭죽을 터뜨리는 내가 보이곤 했다. 빨간 벽돌로 쌓아진 빌라들 사이에는 너나할 거 없이 자리잡은 빨랫감들이 놓여 있었고 집으로 들어가면 두명이서 살기 좋은 작지만 근사한 쇼파가 놓여진 집에서 나는 엄마와 함께, 그리고 가끔은 너와 함께 시간을 보내곤 했다.

 "너는?"

 "어?"

 "너는 꿈이 뭐야?"

 꿈. 내 꿈이 나에게 꿈을 물었다.

 나에게 꿈은 너가 아닐까. 날 꿈꾸게 하고 나에게 꿈을 보여주는 너는 이미 내가 두번 다시 가질 수 없는 소중한 꿈인데 나는 차마 너에게 너가 꿈이라고 말해주지 못했다. 우린 다른 시간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이기에 나는 너에게 너가 아닌 다른 꿈을 말할 수 밖에 없었다.

 "네 꿈이 이뤄지는 거."

 그러니까 너는 너의 꿈을 이뤄내 내가 너의 꿈에 계속 자리잡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느 너와 다른 시간을 살고 있지만 내 시간의 너는 정말 눈부신 꿈같은 애였으니까. 그러니까 나는 내 꿈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평생을 저주한 신에게 빌어본다. 날 사랑해서 내가 사랑을 하지 못하게 만들고, 엄마가 날 사랑한 것에 대해 사과하게 한 저주하는 날 사랑하는 신에게 처음으로 소원을 빌어본다. 엄마가 살아나게 해달라는 허무맹랑하지만 희망 없는 소원 대신에 너가 꿈을 이룰 수 있게 해달라는 염치없는 소원을 지금 연주하는 시간에 담아 보내본다.

 

 "나랑 불꽃놀이 보러 가자!"

 "불꽃놀이?"

 나는 널 만나고 평생을 이름 모르고 살아온 이 악기의 이름을 찾고 있었다. 혹시 말해주면 너가 좋아하지 않을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 시간을 연주하며 머릿속을 헤메고 있었다.

" 내가 맨날 말했더 거! 오늘 우리 마을에서 축제 하는데 저녁에 불꽃놀이 한다고 했거든. 나랑 보러 가자!"

 아마 너는 이 악기의 이름을 평생 몰라도 되겠지만 알려주고 싶었다.

 "그래."

 그래서 나는 악기 대신 너의 손을 잡고 멈춘 시간으로 걸어갔다.

몇 년 전, 혼자서 남들과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게 싫어서 악기를 내려놓고 마을로 나간 적이 있었다. 모두 각기 제 할일을 하다 멈춰있었고 그 속의 나만 움직이고 있었다. 멈춘 시간 안에서 시간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잠을 자거나 책을 읽으며 지내다 일주일이 채 안되어 나는 다시 숲으로 들어가 시간을 연주했다. 나는 멈춘 세상에서 혼자 살아가지 못했다. 그건 살아가는 내내 나에게 상처를 새기며 곱씹는 일이였으므로 나는 다시 시간을 연주할 수 밖에 없었다.

 혼자 멈춘 시간을 걷지 않는 건 처음이였다. 너의 손을 놓치지만은 않을 정도로 잡은채 숲에서 나와 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북적이는 도시 사이를 너와 함께 걸어갔다. 멈춘 세상 속에서 마치 처음부터 우리 둘뿐이였다는 듯 우리는 서로의 손을 잡은채 걸어갔다. 나는 알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지 않아 멈춰있던 나의 세상에서는 정말 너와 나 둘뿐이였을지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는 흘러가는 너의 세상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근데 지금 밝아서 불꽃놀이 안 보일 것 같아."

 "그래?"

" 응. 그리고 불이 붙다 말았어."

 너의 손끝으로 시선을 돌리자 시간과 함께 폭죽의 끝자락에 멈춰버린 불길이 보였다.

 "어 만지지마. 뜨거워."

 "붙었다."

 손을 불에 가져다 대자 이내 불이 무서운 속도로 폭죽을 향해 달려들었고 정말 무섭게 큰소리와 함께 하늘에서 퍼졌다.

 펑

 나는 조금 바보같게도 불꽃을 보며 멍 때렸다. 너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아직 밝은하늘에서 터지는 불꽃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내 어깨를 두드리던 널 보고 뒤 돌아봤을 때 난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웃는 방법을 그렇게나 헤멨었는데 널 보면 그 노력으로 채워진 어설픈 방법들이 진짜인 것처럼 날 웃음 짓게 한다는 게 너무 행복해서 나는 

 "승관아"

 "응?"

 "널 사랑해서 다행이야."

 멈춘 세상의 침식돼버린 감출 필요 없던 진실의 원인인 나의 작은 세상의 위에서는 불꽃이 빛나고 있었고 내 작은 세상에서 너가 웃고 있었다. 숲의 끝이 다다를 즈음에 비춰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면 멀어버릴 것 같던 햇살도 견뎠는데 너는 내가 견딜 필요 없이 나를 빛내줘서 나는 널 본 순간부터 너를 사랑했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된다. 기억과 시간이 머무른 나의 느린 시간이 너로 인해 남들보다 더 빠르게 흘러가고 나는 널 처음봤을 때의 열다섯이 아닌 열여덟의 모습으로 너의 손을 잡고 숲으로 들어갔다. 내 시간과 너의 시간이 맞닿을 수 있는 아마 유일한 장소인 이 숲에서는 너와 나의 시간이 모두 멈춰버리고 나무 틈새로 보이는 하늘의 눈에 띄지 않았던 회전이 눈에 띄게 멈춰 우리를 가둬놓았지만 이것은 아프게만 느껴지는 신의 축복이므로 나는 다시 시간을 연주한다.

 

 "승관아."

 "응."

 "우리 도망갈까?"

 분명 질문으로 던진 말이였는데 끝을 올리지 못했다. 너의 입꼬리처럼. 내 말과 함께 내 연주가 멈추자 너는 잔디 하나 없는 바닥에서 일어나 나에게 다가와 입술을 포갰다. 우리의 시간이 같았다면 이 시간 속에서 부디 우리 둘이 머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함과 동시에 나는 눈을 더 재덜이처럼 사라져가는 악기를 바라봤다. 너의 손에는 이름을 알고 싶지도 않은 무언가가 들려 있었고 너의 손에는 보고 싶지 않은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너무 많은 일이 지나간 후였다.

 "지금 무슨..."

 "한솔아 미안해..."

 나는 너에게 내 이름을 알려준 적이 없는데 사실 이름이 기억난지 보름도 되지 않았는데 너는 내 이름을 부르며 울고 있었다. 내가 한가지 간과하지 못한 사실 하나, 너는 왜 시간이 멈춘 것에 아무 말이 없었던 것인가. 둘, 내가 시간을 멈춘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또 그에 필요한 도구가 악기인지를 어떻게 알았는가.

 엄마의 유품이라고 칭해야 될지 망설여지는 신의 저주라고 생각한 무책임한 시간의 창조자가 만들고 간 악기는 이제 형태를 알 수 없게 모래처럼 사라지고 날린다. 이 숲의 바람은 엄마가 죽었을 때만 불었는데.

 

 

 

 내가 어렸을 때, 한 4살 때 시간이 멈춘 적이 있었다. 나는 멈춰버린 시간의 한복판에서 엄마의 치마자락을 붙잡고 울다 이 시간의 원인을 만났다. 금발의 머리를 휘날리며 숲에서 걸어오던 그녀는 날 보고 웃으며 매일 초록지붕의 집으로 가곤 했다. 거기서 그녀가 뭘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채 엄마를 보며 울기만 했고 적어도 일주일의 세번은 그런 일이 반복됐다. 그러다 어느날 그녀는 여느때와 같이 울던 날 안고 그 집으로 갔고 그곳에는 내 또래의 남자애가 있었다. 그녀는 그날 나에게 두가지의 숙데를 주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애초에 그녀가 돌아올 곳은 아니였지만. 그리고 그녀가 돌아오지 않은지 5년째가 되던 내가 9살이 되던 해의 우리 마을의 한 남자애가 숲으로 들어가 다시는 나오지 않았다. 그 남자애가 숲에 들어간 그날 마을에는 바람이 심하게 불었고 나느 그제서야 알게 됐다. 그 남자애가, 어느날 갑자기 나타나 이상하다며 눈초리를 받다 결국 키워지던 초록지붕의 집에서 버려진 그 남자애가 그녀의 아들이라는 것을.

 "너가 걔를 사랑해줄 수 있겠니?"

 내가 사랑해야 하는 애라는 것을.

 그녀가 나에게 주고 간 두가지의 숙제 중 한 가지는 내가 그 애를 사랑하는 것이였고 한 가지는 그 애의 시간을 없애는 일이였다. 나는 그녀가 떠나고도 두번째 숙제의 이유를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 애가 마을로 온 날 나는 그 뜻을 알 수 밖에없었다. 그 애는 4일 동아 멈춘 시간 속에서 홀로 지냈다. 하루는 마을을 돌아다니고 하루는 책을 읽고 하루는 잠만 자고 그리고 마지막 하루는 내내 우는 것으로 그 애의 짧은 일탈을 끝낸 채 돌아가 다시 시간을 연주했다. 이상하게도 시간이 멈춰질 때마다 나의 시간은 흘러가서 나는 그 4일 동안 그 애를 피해다녀야 했고 마지막 날 우는 널 보며 알게 됐다. 너의 시간을 없애야 하는 이유를.

 "시간을 없애면 어떻게 되는데요?"

 "아마 죽을거야."

 "근데 왜 없애요?"

 내 물음에 그녀는 다른 말을 했었다.

 "승관아 너가 왜 시간이 멈췄는데도 움직이는 줄 아니?"

 "아니요."

 "그건 내 엄마가 널 사랑했기 때문이야. 물론 나를 제일 사랑하셨지만 그에  만만치 않게 너도 사랑한 거지."

 "그럼 아줌마도 절 사랑해서 제가 지금도 움직이는 거에요?"

 "응. 넌 내가 죽은 뒤에도 계속 멈춘 시간 속에서 시간의 연주자와 같이 있을거야. 너는 사랑받은 애니까. 그러니까 승관아"

 너가 받은 사랑을 아줌마 아들에게 한번만 베풀어줘. 한솔이가 그녀를 만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을지 난 몰랐다. 아마 자신을 사랑해둬서 고맙다는 말이  아닐까. 그럼 나는 그런 한솔이의 옆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을 내가 봐왔던 그 어느 노란색보다 예쁜 그 금발의 그녀를 보며 이렇게 말해줄 것이다. 당신이 나에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어도 나는 이 애를 사랑했을 거라고.

 

 

 너의 손에서 악기가 바스라지며 너의 형태가 불분명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혹시나 너의 운명을 바꾼 건 아닐까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너는 날 분먕 원망해야 했는데 날 보며 넌 이렇게 말했다.

 "사랑해."

 사라져 간다. 혼자서만 다르게 흐르던 너의 시간도, 시간을 지키기 위해 조바심 내던 이 숲도, 비추지 않았지만 누구보다 뜨겁게 타오르고 있던 태양도 마치 처음붜 없었다는 듯 사라져 갔다. 내가 너에게 생각나는 걸 말하라고 했는데 우습게도 이제는 같은 시간 위에 서서 사라져가는 널 보며 나는 그 어떤 말도 하지 못한다. 

 

사랑해달라고 했으면서 그녀는 왜 내가 널 죽이게 만든건지. 너는 왜 나를 사랑해서 널 죽인 나에게도 사랑한다고 말해서 나를 울리는지. 나는 너의 시간 위에서 반쪽자리 사랑으로 살아가 너를 만나 나를

 

꿈꾸게 했는지.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