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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st Vernon RPS COLLABORATION

[솔원솔] 불시착 미래인

비락 / 글

시간여행은 언제나 SF영화의 단골 주제이다. 그리고 실제로도 많은 과학자들, 혹은 괴짜들이 시간여행을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안녕하세요 저는 타임머신을 타고 2147년에서 왔어요”

 

내 앞에 시간 여행자가 떨어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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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옥탑방 앞에 떨어진 시간 여행자는 이름이 최한솔이라고 하였다. 아주 미래의 사람치고는 상당히 현대적인 이름이라 약간 의심스러워졌다. 의심스러운 눈으로 보니 최한솔은 (나보다 150년가량 늦게 태어났으니 동생으로 치기로 하였다) 억울해하였다. 그래서 그냥 믿어주기로 하였다. 최한솔은 2147년의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었던 23세 건장한 청년이라 하였다. 그 말을 하는 최한솔은 상당히 건장해 보여 믿어줬다. 2140년대에는 타임머신이 보급까진 아니나 소수의 인원은 타임머신을 종종 이용하고 있다고 최한솔이 말했다. 타임머신을 이용하는 기준이 무어냐 물었더니 돈이라고 심플하게 답해서 더욱 믿음이 갔다. 제일 궁금했던 그럼 왜 타임머신을 타고 우리 집 앞으로 왔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최한솔은... 갑자기 표정이 굳어지더니 슬픈 고양이 같은 표정으로 타임머신이 고장 났다고 답했다. 그러니까 2147년의 최한솔은 큰돈을 써서 과거로 여행을 온 건데 타임머신이 고장이 나서 2020년도의 우리 집 앞으로 불시착한 거다. 어차피 과거로 여행 오려 했던 건데 뭐가 문제냐 물었더니 맞는 말이긴 하지만 이 정도 과거로 오고 싶진 않았다고 답했다. 그럼 이제 어떻게 돌아가느냐 물었더니 최한솔이 또.. 슬픈 표정을 짓더니 방법을 모르겠다고 답했다. 타임머신이 고장이 나서 불시착한 건데 이 아이는 소비자일 뿐 고칠 방법을 모르니 돌아갈 방법이 없는 것이었다. 이거 완전 큰일 났네 나도 덩달아 심각해졌다. 나는 평범한 청년이기에 당연히 타임머신을 고치는 걸 도와줄 수 없었다. 내가 미래의 기계를 고칠 줄 알면 군대를 갔다 올 게 아니라 나사에 들어갔겠지. 여하튼 나는 이 불시착 미래인을 일단 내 옥탑방에 거둬두기로 했다. 솔직히 미래에서 왔다는 말부터 뭐하나 믿기지 않지만, 귀여우니까. 대충 길고양이 주운 걸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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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한솔이 내 옥탑방에 들어온 지 한 달, 이 불시착 미래인은 생각보다 얌전하고 잘 먹고 혼자 잘 돌아다녔다. 네가 살던 미래랑은 조금 다르지 않냐 물었는데 다르긴 하지만 비슷한 부분도 있어 흥미롭다 답하였다. 그럼 미래와 달라진 곳은 어디냐 했더니 롯데월드는 없다고 했다. 마침 곧 크리스마스고 나도 롯데월드가 가고 싶어져 그럼 롯데월드 갈까 하고 최한솔에게 말했다. 최한솔은 눈을 크게 뜨더니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웃는 최한솔은 처음 봤는데, 한솔이는 웃는 모습이 예뻤다.

 

롯데월드는 추웠다. 눈치 게임에 성공한 건지 사람은 별로 없었는데 너무 추워서 한솔이와 나는 벌벌 떨며 놀이기구를 탔다. 한솔이는 생각보다 겁이 없는지 좀 무서운 놀이기구도 잘 탔다. 그래서 나는 무섭지 않으냐 물었고 생각 외로 최한솔은 무섭다 하였다. 그래서 무서우면 말하지 그랬느냐고 하니 놀이공원 처음 와봐서 무서워도 그냥 타고 싶었다고 대답해 나는 당황했다. 미래에는 놀이공원이 없냐 물으니 그건 아니고 그냥 그런 사정이 있다 하길래 나도 더는 묻지 않았다. 약간 어색해진 분위기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최한솔은 오늘 재밌었다며 고마워 원우형 이라 하였다. 갑자기 뭐라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냥 웃었다.

 

최한솔은 왜 놀이공원을 가지 못했을까. 그게 자꾸 마음에 걸렸다. 그냥 이제까지는 약간 헛소리하는 군식구 정도로 생각했는데 갑자기 그날 고맙다던 최한솔 표정이 진짜 미래에서 온 애 같아서, 그래서 신경이 쓰였다. 신경이 쓰여서인가? 나는 그날부터, 고맙다는 말을 들은 순간부터 한솔이가 미래에서 내 옥탑방으로 불시착했단 걸 믿게 되었다. 정말로 한솔이는 2147년이라는 미래에서 왔고 이 과거에서 의지할 사람은 나 하나뿐인 아이라는 것 또한 믿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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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올해의 마지막 날이 다가왔다. 이날을 애인도 아니고 미래에서 떨어진 최한솔과 맞이할 줄 몰랐는데 하니 최한솔이 그냥 웃었다. 롯데월드를 다녀온 후 최한솔은 갑자기 혼자 바빠졌다. 바빠진 거라기엔 활동량은 확연히 줄었지만 어쨌건 나한테 말도 걸지 않고 혼자 생각하고 끄적이길래 그냥 뒀다. 과거로 떨어졌는데 혼자 기록할 내용이 많겠지.. 나는 그동안 시간여행이 키워드인 온갖 소설을 읽었다. 시간 여행자가 다시 돌아가 이별하게 되는 내용도, 시간 여행자가 돌아가지 않고 함께 행복하게 살았다는 내용도 모두 마음에 들지 않아 매번 신경질적으로 책을 덮었지만. 여하튼 이런 비현실적이지만 내 현실인 상황에서 의지할 경험 비슷한 것은 이런 소설들뿐이니까 읽었다. 앞서 말했듯이 읽다 덮어서 별로 도움이 되진 않았지만. 오늘도 미래와 과거 온갖 추상적인 개념을 생각하다 알바에서 집으로 돌아왔다. 해의 마지막 날인데 뭐라도 먹어야 하지 않나 싶어서 돌아오는 길에 케이크를 사 들고 왔더니 한솔이가 내내 웅크려있던 방 안에서 나왔다. 케이크를 먹는 내내 방실거리는 걸 보니 단 걸 좋아하나보다 종종 사 와야지 속으로 생각했다. 카운트다운이 시작되고 새해가 되는 순간 나는 소원을 빌었다. 새해에는 한솔이랑 저랑 웃는 일이 많게 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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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가 되고 한솔이는 기록이 끝났는지 내 주변을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내가 알바하는 곳까지 올 때도 종종 있었다. 그런 날에는 같이 케이크를 사 들고 퇴근해서 케이크를 퍼먹었다. 물론 한솔이가 먹고 나는 한솔이가 모르게 야무지게 먹는 한솔이를 구경했다. 단 걸 어찌나 좋아하는지, 그런데도 최한솔은 자신이 단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주장한다. 무슨 청개구리인지 나 참.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루였다. 나를 찾아온 한솔이와 함께 퇴근하며 케이크를 사 와 먹는 중이었다. 문득 타임머신은 그럼 아직 고칠 방법을 못 찾은 것인가 싶어져 물었다. 케이크를 한 포크 뜨던 한솔이는 그대로 멈추더니 나에게 고쳤길 바라냐 물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영영 안 고쳐졌으면 좋겠다 답했다. 아니 내가 흑심을 품은 건 아니고, 소설들을 보면 타임머신이 고쳐지면 남겨지는 사람은 불행하거나 기억을 잊거나 하더라고. 나는 한솔이를 잊고 싶지도, 불행해지고 싶지도 않으니까. 안 고쳐졌으면 한다는 내 대답에 한솔은 멈췄던 손을 움직여 다시 케이크를 먹었고 나는 그냥 다시 최한솔을 구경했다. 구경하다 새삼 깨달은 건데 잘생긴 얼굴이더라. 그래서 물었다. 혹시 미래의 사람들은 다들 너처럼 미형으로 생겼냐고. 한솔이는 멈추지 않고 먹으면서 생각해보더니 사람마다 미의 기준은 다르기 때문에 대답을 못 하겠다고 했다. 한솔이다운 답변이어서 나는 웃었고 한솔이는 내가 왜 웃는지 몰라 그냥 케이크를 먹었다. 그나저나 알바를 하나 더 구해야 할 듯싶다. 한솔이 먹성이 좋아서 식비가 빠듯하다.

 

결국 식비 충당을 위해 카페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면접을 본 카페가 케이크가 유명하다 하여 홀 케이크 한 판 사들고 왔는데 최한솔이 집에 없었다. 쪽지 하나 안 남기고 뭐야 이런 적이 없는데. 갑자기 불안해졌다. 갑자기 생겨난 불안감은 순식간에 나를 당황하게 했고 나는 곧바로 집 근처 한솔이가 좋아하는 곳들을 돌아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 곳에도 한솔이가 없어서 점점 맘이 조급해졌다. 이럴 거면 핸드폰이라도 사줄걸. 아니면 미아방지 목걸이 같은 거라도 해줄걸. 제발 어디로 간 거야. 혹시 내가 나간 사이에 집에 왔을까 싶어 집에 가봤는데 한솔의 흔적만 가득하고 최한솔만 없었다. 갑자기 옥탑방에 떨어졌던 것처럼 갑자기 사라진 걸까? 말 좀 해주고 가지 이런 게 어딨어 한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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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47년의 세계는 그렇게 좋진 않다. 기후변화와 빙하가 녹아 깨어난 바이러스들은 인류를 위협했다. 그런 환경에서 심지어 보호자 없이 혼자 성장하는 것은 청소년이 탈선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법이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는 세계였지만 나는 존재하는 규칙이라면 따르고 싶었다. 그렇게 애썼는데 나를 지키려다 결국 사람을 죽이게 되었고 우연히 그 모습을 본 아저씨가 나를 데려갔다. 아저씨는 내게 ‘심부름’을 시키는 것만 제외한다면 제법 괜찮은 보호자였다. 밥도 주고 관심도 주고 여행도 종종 갔으니, 그렇지만 아저씨의 심부름은 누군갈 죽여야 하는 일이었고 나는 괴로웠다. 어느덧 성인이 되어서도 나는 아저씨와 함께 종종 아저씨의 심부름을 해주며 살았다. 어느 날 아저씨는 이번 심부름만 해주면 이제 부탁하지 않겠다. 제안했다. 그래서 하겠다고 했는데 과거의 인물을 죽이는 일이었고 와중에 타임머신 고장으로 잘못된 시간대에 내리기까지 하였다. 돌아갈 방법은 없었다. 아저씨가 그냥 나를 버리려던 건 아닐까 싶었는데 그 비싼 돈을 들여서 버리느니 그냥 죽이는 게 나을 성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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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쨌든 그렇게 살게 된 2020년의 서울은, 나쁘지 않았다. 겨울이라 조금 춥긴 했지만 원우 형은 생각보다 살갑고 정 많은 사람이었고 나름대로 과거에 적응 중이었다. 롯데월드도 재밌었다. 책 속에서 경험한 놀이동산은 생각보다 그렇게 재밌진 않았다. 춥고 무섭고 기대보다 별로고, 그렇지만 신난 원우 형의 표정이 좋아서 롯데월드는 재밌었다. 롯데월드에서 돌아온 날, 타임머신과 연결된 손목밴드가, 깜빡였다.

 

메시지가 도착했다. 미래에서

 

수신된 내용은 한 줄 뿐이었다. 곧 구조하러 가겠다. 돌아갈 수 있다는 말인데 왜 기쁘지 않은 걸까 나는 그날부터 미래에 돌아가면 아저씨에게 말해줄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2020년의 서울은 경복궁이 있어요. 무너지지않은 경복궁은 사진보다 좀 더 멋지더라고요 또 2020년의 서울에는 원우 형이 있어요 원우 형은 차갑게 생긴 것 치고는 나름 다정하고 친절해요. 원우형은 또.. 적다 보니 원우형 칭찬뿐이길래 나는 그냥 적는 걸 멈췄다. 돌아가면 원우 형을 못 보겠구나 아무래도 약 120년 후의 세상에서 원우 형이 살아있기는 어려우니까. 좀 슬프네 돌아가지 말까

 

돌아가지 않겠다 다짐한 후부터 나는 원우 형을 따라다녔다. 원우 형이 주는 달콤한 디저트들 때문이 아니라. 내가 따라다닌 것이다. 원우 형과 함께 퇴근하는 길에 사 와서 먹는 케이크는 맛있었다. 폭신폭신하고 달콤하고 좋았다. 형은 내가 먹는 모습을 구경하곤 했다. 내가 모를 줄 알았겠지 다 알고 있었다 형이 내가 케이크 먹는 걸 신기하게 보고 있는 것. 그러다 어느 날 형은 타임머신을 고칠 방법은 못 찾은 것이냐 물었다. 그래서 나도 물었다. 고치길 바라느냐고. 형은 웃으며 영영 못 고치길 바란다 답해서 나는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그날은 케이크를 평소보다 더 신나게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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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 나간 사이에 누가 문을 두드렸다. 원우 형은 친구가 없어서 누가 올 리가 없는데 하면서도 일단 착실하게 문을 열었다. 아저씨였다. 아저씨가 여기에 있을 거라 상상도 못 했는데 너무 당황해서 그대로 굳어있었다. 아저씨는 당황한 나를 보고는 그저 데리러 왔다며 돌아가자고 했다. 나는 정신 차리고 아저씨에게 돌아가지 않겠다 답했다. 아저씨는 왜 돌아가지 않겠냐고 내게 물었다. 이 시간이 더 좋아서요. 아저씨는 표정을 찌푸리더니 그래 알겠다며 잘 있으라 하고 돌아갔다. 아저씨가 왔을 때는 낮이었는데 돌아가니 밤이 되어있었다. 아무래도 아저씨가 돌아갈 때 타임머신이 나에게 영향을 미쳤나 보다. 음 형이 돌아올 시간이 한참 지났네 나 걱정했겠다. 생각하는데 집에서 누가 나왔다. 원우형 하고 부르니 형이 달려와 양손으로 내 볼을 부여잡았다. 어딜 갔다 온 것이나 왜 쪽지를 남겨두지 않았냐 굉장히 빠르게 말을 하는 원우 형에게 나는 말했다.

 

 

“형”

“그래 한솔아”

“저 미래로 돌아가려다 말았어요”

“..그래?”

“형 좋아해요”

 

뭐 어쩌라는 거니 한솔아. 이 불시착 미래인 지금 나보고 자기를 책임지라는 거겠지? 골치가 아프지만, 한솔이 돌아가지 않아서, 내 옆에, 내 눈앞에 앞으로도 있을 테니까. 나는 그에 만족하기로 했다. 미래인과 함께 할 현재가 기대되네

 

불시착 미래인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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